Siyina 2018. 3. 8. 10:51

이곳, 혼마루는 대체적으로 현세의 날씨를 따라 조정되었다. 기본적으로 주인의 마음이었지만 그들의 주인, 그녀는 현세의 날씨를 따르길 바랐다. 그러다보니 결국 그녀가 싫어하는, 그런 날씨가 설정되는 것도 사실 무리는 아니었다. 기온도 습도도 높은 여름, 주인은 그 계절을 가장 싫다 하였다.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하였는데, 그녀는 그 눈을 꼭꼭 가리고 다니니 이유를 어림짐작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이유를 묻자니 그녀가 답하지 않을 것 역시 훤히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렇기에 남사들 사이에서는 저들의 주인이 여름을 가장 싫어하는 이유를 그저 높은 온도와 습도, 더운 날씨 탓이라 생각되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번에 부숴버린 것은 어느 여름 날의 흔한 장마였다.


톡, 토독, 토도독. 본채와 별채의 지붕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남색빛을 내고 있던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어두워졌다. 그들이 그것을 눈치챈 것은 아침이었다.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남사들과 주인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와 카센 카네사다였다. 남들보다 조금 빠른 기상시간에 바깥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방에서 만난 둘은 오늘은 비가 오는구나. 그렇네. 현세도 비가 내리고 있는 걸까? 하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준비가 다 되자, 그들은 자연스레 주인의 것부터 챙겨놓기 시작했다.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어라? 이상하네. 주인 군, 오늘은 조금 늦는 걸?"

"그렇구나. 오늘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식당은 다른 도검들로 하나 둘 가득 차기 시작했음에도 주인은 오지 않았다. 더불어, 그들 사이에 가장 눈에 띄어야 할 한 자루도 보이지 않았다. 미카즈키 무네치카.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남을 돌보는 것은 잘 하지 못한다는 그가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고는 주인을 데리고 식당으로 오는 일이었다. 사실 원래라면 그녀는 그녀의 방에서 따로 먹어도 상관이 없었다. 다만 그녀가 그러기 싫다는 이유로 누군가 한 명이 데리러 가곤 했었다. 그 일이 현재는 미카즈키로 고정되어 있는 것 뿐이었다. 몇몇의 남사들이 식사를 다 마치고 각자 할 일에 돌아갈 때까지 그들의 주인은 식당에 내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별채에 머문다지만, 이런 일은 없었기에 둘은 굉장히 의아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침 식사를 다 마친 이치고 히토후리가 식기를 반납하며 "제가 가보겠습니다." 하고 웃어보였다. 많은 동생들을 챙기고 있는 그였기에 다른 이들을 보살피는 것은 굉장히 적격이었다. 그랬기에 두 자루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주인을 잘 부탁한다거나, 주인을 꼭 데려오라는 등의 이야기를 건네었다. 작게 미소를 지은 이치고는 아직 식사를 다 마치지 못한 동생들에게 주군을 데려오러 다녀오겠다며 말을 전한 후 식당을 나갔다. 여전히 군더더기 없는 걸음걸이였다. 걱정을 한시름 덜은 미츠타다와 카센은 부엌을 나와 식당에서 자신들 몫의 식사를 챙겨 식탁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조용한 합장이 식당 안에 울려퍼졌다.



맑은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별채 지붕에 떨어지고, 폭우 같은 비가 작은 폭포 소리를 내며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드물게도 주인의 방은 굳게 닫혀있는 상태였다. 평소에도 결계라면 치고 지내지만 오늘은 유독, 그녀의 방과 직결되는 문의 결계는 더욱 심했다. 천하오검 중 하나인 미카즈키마저 뚫고 들어갈 생각을 바로 하지 못할 정도로. 확실히 그들의 주인은 굉장히 영력이 맑고, 풍부했다. 그랬기에 이렇게 혼마루 자체도 풍족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친 결계를, 심지어 진심인 듯 보이는 결계를 어찌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 적어도 목소리만은 전해지길 바라며 미카즈키는 결계를 두어번 두드렸다.


"주인 아가, 미카즈키 무네치카란다. 식사는 해야지."

"...오늘은 패스할래."


그녀의 목소리가 잠겨있다는 것을 미카즈키는 굉장히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아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그리 물으며 결계를 다시 두어번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딘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 뿐이라면야 다행일 터인데, 결계까지 쳐두고 있으니 미카즈키는 한숨만 뱉었다. 미카즈키 공. 은은하고 익숙한 아와타구치 도파 장남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상당히 예의가 바르고, 남을 돕는 것을 잘한 덕인지 모두에게 굉장히 호감을 사고 있는 도검이었다.


"주군께서는?"

"결계까지 단단히 쳐두고 나올 생각을 하질 않는구나."

"흐음......"


이치고 히토후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결계를 통통 두드렸다. 주군, 이치고 히토후리입니다. 열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평소와 다름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음에도 결계의, 꼭 닫힌 문 너머의 주인은 그저 오늘은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만을 들려줄 뿐이었다. 미카즈키는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주인을 봐 온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 아예 없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였다. 그들이 주인의 방을 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도중, 정말이지 이곳에서 가장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해봤자 주인 방은 안 열려."


일인용 식탁을 들고서는 카슈 키요미츠는 태연히 둘을 바라보았다. 주인의 초기도였기에 주인에 대한 것은 이 혼마루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가 식탁을 들고 왔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 덕분에 그들은 그저 가만히 그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주인, 카슈 왔어. 식사거리 갖고 왔으니까 먹어.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결계가 단숨에 약해졌다. 미카즈키와 이치고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꿈뻑이고 있을 때 유일하게 카슈만이 태연했다. 태연했다기에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조금 이상했지만.


"아아, 기절해버렸네."

"기절이라니, 카슈. 무슨 말인고?"


카슈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일단 들어가서 알려주겠다며 고개짓을 했다. 얼른 문을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그 역시 검이었기에 혼자서도 열 수 있었지만 이때는 그러지 않았다. 일부러인지, 아니면 정말 한 손으로는 어려웠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치고는 둘을 제치고 앞으로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걸쇠까지 걸려 있었다. 평소에는 쳐두지도 않던 암막커튼까지 쳐져 있었다. 그녀의 방에는 적당히 큰 창문이 두어개 있었는데, 모든 창문이 그렇게 가려져 있었다. 카슈는 방 구석에 대충 식탁을 내려두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녀를 들어올려 침대에 눕혔다. 정말이지, 너무도 연약한 주인이었다.


"음, 일단 둘이 궁금한 건 그거지? 주인이 왜 갑자기 쓰러졌는가."


맞지? 되묻는 목소리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가장 급한 것은 그것이었다. ...라기보다는 어째서일까, 미카즈키와 이치고는 자신들이 궁금한 것들이 서로 이어져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을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별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카슈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침대 매트리스 받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방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둘에게도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차피 이야기는 길어질 것이고 주인이 깨어날 때까지는 아직 한참 걸릴 터였다.


"주인은 아마 내가 장담하건데 잠을 못 잤을 거야. 비가 오니까."

"잠을 자지 '못'했다?"

"주무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요...?"


거의 동시에 터져나온 둘의 궁금증에 고개를 끄덕였다.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카슈 키요미츠가 초기도인데도 이런 이야기를 둘에게 한다는 것은 그들이 주인을 누구보다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적어도 이 둘에게는 충분히 알릴 수 있었다. 그렇게 판단했기에 짧게 요점만을 정리하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인이 여름을 싫어한다는 소리는 들어봤지? 그건 뭐랄까... 틀린 말은 아닌데 정답도 아닌? 그런 느낌이야. 우리의 어린 주인님은 비 오는 것을 제일 싫어하거든."


거기까지 말하고 카슈는 말을 끊었다.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초기도인 만큼 아는 것도 많았기에 어느 것을 말해야 되고 어느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지 골라내는 것 같았다. 카슈가 그렇게 조용히 하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참을성이 굉장히 좋은 검들이었기 때문인 것이 이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는 두번째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얌전히 정좌로 앉아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유는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주인은 옛날... 그러니까 나 밖에 없을 때부터 비오는 날을 굉장히 싫어했어. 지금은 좀 나아진 편이지. 그 전에는 물소리만 들려도 흠칫거렸는 걸. 보는 것 뿐이라면 괜찮은데, 소리가 안 괜찮은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 이 소리 같은 거."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둘을 응시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주인의 숨소리와 바깥의 빗소리만이 조용히 울려퍼졌다. 눈치빠른 두 사람은 단숨에 눈치챘다. 주인은 비오는 날의 소리가 싫은 것이었다. 여름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카슈는 "원인은 아마 주인이 정식으로 인정받기 전에 있었던 일이 원인인 것 같아." 라며 덧붙였다. 창 밖은 여전히 회색빛의 하늘에 투명한 물방울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