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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혼마루들 정화 사니와 & 임시 사니와 → 현 혼마루의 사니와」 로 왔다는 설정
* 검 → 사니
* 창작 사니와 (드림주)
* 아마 검들에 의한 사니와의 힐링물






그녀가 눈을 뜬 것은 저녁 시간이 이미 지나버린, 밤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녀의 옆을 줄곧 지키고 있던 카슈는 그녀가 깨어났음을 눈치채고 옆의 베일을 건네주었다. 이미 익숙해진 듯 받아든 그녀는 베일을 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깥에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정말 드물게도, 다른 점이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선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마 자는 사이에 사니와 일을 대신 처리한 카슈가 그들에게 현세에 다녀올 권한을 조금씩 나눠준 것이겠지. 그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 이것들이 자신의 주변에 펼쳐져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의문을 이해한 것인지 카슈는 작게 웃었다.


"주인한테서 점수 따려고 그러는 거래. 아직 안 온 쪽은 아와타구치랑 산죠, 둘이네."


아와타구치는 아무리 인원이 적어도 많은 것으로는 가장 많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단도들은 호기심이 꽤나 많은 도검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산죠는 어째서? 하고 의문을 품고 생각에 잠겨있던 도중, 야만바기리가 방 안에 들어왔다.


"카슈, 산죠 도파가 돌아왔... 일어나 있었던 건가, 주인."

"방금 일어났어."


문을 열고 들어온 야만바기리의 뒤로 이마노츠루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앗, 주인님이다! 하고 밝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쪼르르 다가갔다. 나이로 치자면... 노코멘트를 하겠지만, 단도였던 탓인지 귀여워보여 품에 포옥 안아버렸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마노츠루기를 보고 있자면, 9살 전까지 지냈던 신사에 종종 보이던 기모노를 입은 3살, 5살 7살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랬기에 오히려 더 무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홀로 그 시기에 대해 떠올리고 있자니, 미카즈키가 이마노츠루기를 불렀다. 퍼득, 과거에서 빠져나와 옆을 바라보자 정좌를 한 채로 앉아있는 산죠 도파... 그러니까, 미카즈키와 이시키리마루, 이마노츠루기가 정좌로 앉아있었다. 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꿈뻑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우리가 현세를 다니며 생각을 해보았는데 말이다. 역시 아가에게 좋은 선물은 이것이 최고인 것 같아서 말이야."

"네......?"


얼빠진 소리를 내며 셋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마노츠루기가 미카즈키를 향해 타박했다. 그녀는 이 때, 자신이 베일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감사했다. 안 그랬다면 그 얼빠진 얼굴이 그대로 그들에게 노출되었을테니까.


"아이, 참. 미카즈키! 그러면 주인님이 못 알아들으시잖아요!"

"으음? 그런게야?"

"하하. 우리들처럼 헤이안 쪽이 아니니 말이야."


약간의 만담을 보는 느낌이 들어 긴장했던 자신이 어째선지 초라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만담은 금방 끝나버려, 그녀는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긴 했지만. 아가. 하고 부르는 미카즈키의 목소리가 어째선지 가라앉은 것 같아, 움츠러든 그녀를 보고는 미카즈키는 울상을 지었다. 평소에는 표정 변화 하나 없던, 웃는 낯으로 시종일관 방관하던 그가 그녀를 보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하고 작은 소리로 덧붙이며.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우리가 아가에게 주는 선물은 우리란다. 정확히는 우리의 본체지만서도."

"......어, 그러니까, 그 말은..."

"우리가 이제 주인님을 지켜줄게요!"

"혼자서 애쓸 필요 없단다."


그들의 말에 미카즈키는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전부 맞다는 듯이, 그저 그녀를 향해 다정히 웃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다물고, 열었다가 다물기를 반복하더니,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선물들을 조심히 피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카슈와 야만바기리는 놀란 듯 얼어있었고, 정좌로 앉아있던 그들은 그녀를 따라 일어나더니, 그녀가 자신들 쪽으로 올 때마다 꼭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보는 부모처럼 안절부절거렸다. 겨우 그들의 앞에 도착하자, 조심히 팔을 뻗어 그들을 안았다. 고마워요. 하고 작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을 안고 있으니, 정신을 차린 카슈가 그녀를 빼앗듯 안아올렸다.


"네네, 거기까지. 아직까진 주인의 영력을 받은 건 우리 뿐이거든?"

"그래서 받으러 온 것이란다. 아가, 우리를 받아주지 않겠니?"

"......"


고개를 가볍게 끄덕임에 희비가 확 갈려버렸다. 그 모습에 그녀는 카슈의 머리를 조그만 손으로 쓰다듬어주며 "나한테 첫번째는 카슈랑 야만바기리니까, 걱정마." 하고 달래주었다. 카슈는 언제나 그랬듯, 알고 있다 말하면서도 기쁜 듯한 표정은 감추지 않았다. 산죠 도파는 이마노츠루기를 시작으로, 미카즈키, 이시키리마루가 그녀의 영력을 나눠받기 위해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뿌듯해보이는 표정은 감추지 않았다. 카슈가 그녀를 침대에 앉혀주고, 그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이마노츠루기가 가장 먼저 쪼르르 달려가, 그녀의 앞에 자신의 본체, 단도를 내밀었다. 그녀는 그를 쓰다듬었던 손길로 단도를 한 번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칼날의 위에 손을 얹고 영력을 불어넣었다. 현현시킬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하는 중이었다. 적당량이 되었다, 싶어 손을 떼자 이마노츠루기는 그녀의 침대에 폴짝 올라가, 그녀의 뒤에 매달렸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후로도 미카즈키와 이시키리마루에게도 똑같이 해주자, 살짝 바뀐 것이 있었다. 그녀와 그들 사이에서.


"주인 아가, 저녁은 먹었는가?"

"주인님, 주인님! 다음에 외출하실 기회가 생기면 우리랑 같이 나가요!"

"그럼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주인을 위한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해야겠구나."


유일하게 이시키리마루만이 나가려고 하자, 이마노츠루기가 그를 잡아당겼다. 밤에 눈도 안 좋은 대태도가 어딜 단도도 없이 혼자 나가려고 그래요? 하고 하는 말이, 해석하면 꼭 "노안이신 분이 보호자도 없이 어딜 가려고요?" 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단언 그녀만이 아니었다. 야만바기리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카슈를 불렀다. 둘은 어째선지 여전히 통하는 것이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에게 나가라며 손짓을 했다. 나가지 않을 때는 참새를 내쫓듯한 흉내까지 내보였다. 우리 주인 이제 자야 돼. 다 나가! 하고 말하며 내쫓는 것이 꼭...


"......엄마?"


합.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은 그녀의 말에 모두가 굳어버렸다. 카슈는 벙찐 채로 있다가, 그녀를 부르며 후다닥 달려갔고. 물론 그녀에게 붙어서 종알거리는 것이 이번에는 꼭 반대가 된 느낌이었다. 그 모습에 산죠 도파는 웃어버렸지만. 어찌저찌 그들을 진정시키고 본채로 보내자 방 안은 고요했다. 창 밖에는 초승달 하나가 떠 있었다. 예쁜 달이네. 주인은 밤을 좋아하는 건가? ......으응. 낮이 좋아. 밤은 무섭잖아.



아침이 되자, 소식을 들은 단도들이 그녀의 방에 우르르 몰려왔다. 물론 전원 아와타구치였다. 대충 내용은 모두가 짐작했듯, 어떻게 자신들을 두고 산죠 먼저 받을 수가 있냐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결론은 자신들도 받아달라, 라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하필이면 이제 막 일어났다는 점이었고, 눈을 가리기 위한 용도인 베일을 쓰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눈을 뜰 수도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도중에 머리 위로 무언가가 훅 뒤집어졌다. 동시에 너희들! 하고 살짝 화를 내는 듯한 목소리의 이치고가 나타났다. 그녀는 안심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몰려가면 주군께서 당황하시잖아. 그러면 안 돼. 알았지?"

"네에~..."

"다음부터는 꼭 주군께 먼저 양해를 구하고 들어갈 것."

"......"

"대답은?"

"네에~"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야겐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혼자 아무도 모르게 숨죽여 웃고 있으니, 밑에서 손이 하나 훅 들어왔다. 그녀는 놀라기는 했지만 옷 소매가 카슈임을 알았기에 안심하고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받았다. 베일이었다. 그녀는 베일을 평소보다 조금 세게 묶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하얀색은 아니고, 그렇다고 회색빛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하얀색이었지만, 낡고 끝부분이 더러워져 누구의 것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모포를 벗었다. 카슈의 옆에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야만바기리에게 모포를 둘러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착해, 야만바기리. 잘했어. 그렇게 그를 칭찬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카슈가 그녀에게 꼭 달라붙어서는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주인, 나는? 나는 안 해줄 거야? 카슈는 항상 잘하고 있지.



아침의 사건은 이치고와 나키기츠네를 선두로 아와타구치 도파와 라이 파(어째선지 아직까진 둘 밖에 오지 않은 라이파까지 섞여 있었다.)의 본체에 영력을 불어넣어주고 나서야 종료되었다. 물론 최고 보호자 외의 단도들과 대태도 하나는 그녀의 식사를 위해 방문한 미츠타다와 카센에 의해 2차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물론 그녀는 침대 끝에 걸터앉은 채로 따뜻하게 데워진 호박죽을 먹고 있었다. 1/4정도 먹은 후, 그녀는 그릇을 내려두었다. 맛있었어요, 미츠타다. 카센. 남은 양을 보자, 둘은 (특히 미츠타다가) 울상을 지었다.


"주인 군, 혹시 입맛이 없었니?"

"따로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얘기해주렴."


아, 설마. 그녀는 카슈와 야만바기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확답을 구하듯이. 카슈가 먼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야만바기리는 그 뒤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셋의 미묘한 대화를 지켜보던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으음, 하고 작게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확 젖히고는 푹 숙였다. 하아. 그녀의 한숨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작게 울려퍼졌다. 단도들은 자신들이 했던 행동이 있었기에 잘못한 거겠지? 하고 소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나 말거나 카센과 미츠타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적정량이 이 정도인 것 뿐이에요."


대체 얼마나 먹었길래 그래? 하고 야겐이 다가오고, 남은 양을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은 더 먹어야 돼. 하고 덧붙이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카슈는 여전히 그녀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를 껴안은 채로 붙어있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불편하지도 않은지 익숙하게 카슈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물론 질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능숙하게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카슈는 떨어지지 않은 채, 그녀의 말에 덧붙였다. 주인은 여기서 더 먹으면 안 돼. 카슈의 말에 그를 작게 부르며 그녀는 그의 이마에 딱밤을 약하게 놓았다. 물론 작고 연약한 그녀였기에 그가 아팠을리는 없지만 정말 애교를 부리는 것에 능숙한 그는 아프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야겐에게 작게 입모양으로 "트라우마." 하고 알려주었다. 이정도만 알려주어도 훌륭한 의사인 야겐은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기에.


"......설마, 대장. ...하아. 일단 다들 나가. 보호자... 그래, 거기 대장하고 제일 가까운 둘하고 식사담당 고정 멤버 둘만 빼고 나가줘."


이치 형도 나가줘. 부탁할게. 단호한 야겐의 말에 이치고는 단도들(과 단도를 가장한 대태도)을 데리고 그녀의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럼 우리는 야겐이 오기 전에 밥 먹고 놀고 있을까? 하고 이치고는 능숙하게 동생들을 달래, 방으로 돌아갔다. 라이 파의 둘도 동생들과 같이 놀아주시겠나요? 하고 같은 남사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 이치고는 가볍게 닫힌 방문을 향해 인사를 한 후 그들을 좇아갔다. 야겐은 그들이 다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는 그녀를 향해 어제와 같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그랬어?"

"이곳에 오기 한... 혼마루 다섯개 전 즈음...?"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거라면 카슈가 더..."

"그 이야기는 내가 나중에 해두겠습니다~"


야겐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안경을 끼고, 여러가지를 항상 갖고 다니는 수첩에 적는가 싶더니 볼펜으로 수첩을 툭툭 건드렸다. 이곳 야겐만의 습관이었다. 골치가 아픈 환자가 왔을 때마다 하는 습관. 미츠타다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은 야겐 군이 좋아하는 걸로 점심을 해야겠네, 하고 홀로 생각했다. 야겐은 이후에도 지금 먹는 양 이상으로 먹으면 무슨 반응이라도 나타나냐는 등, 이것저것을 질문했고 그녀는 그것에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카슈는 이젠 쓰다듬 받는 것이 아닌 그녀를 쓰다듬고 있었다. 정작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모두가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야만바기리는 남은 그녀의 빈 옆자리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있었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이. 사실 그들의 행동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아는 카슈의 성격 그대로라면 그의 행동은 지금 꽤 과장해서 하고 있는 편이었다. 아마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이 목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차마 그들을 주인 바라기라고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사이 야겐은 이것을 말해야하나 고민하는 것 같더니, 결정한 듯 수첩을 덮고, 펜과 같이 주머니에 넣었다.


"대장은 지금 적정량 이상을 먹으면 몸에서 안 받아줄 거야. 그러니까 구토를 하는 거고. 사실 이런 상황에 적정량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하긴 한데... 아마 기억이 사라진 것이랑 관계가 있을 거고?"


카슈를 힐끔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당시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많이 앓았다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했다. 그마저도 카슈가 알려준 것이었으니까.


"몸에서 안 받아주는 거니까 억지로 먹으려고 하지 말고, 이건 약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평소보다 더 안 받아준다, 싶으면 무조건 나한테 와. 영양제라도 놔줄게. 그리고 둘은 대장이 먹을 양은 작은 머그컵... 있지? 거기에 절반정도 해서 가져다주는 게 좋아. 이런 그릇보다는. 그리고 거기 초기도 둘은 대장이 혹시라도 정량을 넘기지 않게 잘 보고 있고. 주의사항 끝."


대장도 마음 고생 심했겠네, 수고했어. 거기 둘도 그동안 대장 지키느라 고생했으니까 좀 자둬. 오늘 밤은 우리 아와타구치가 돌아가면서 불침번 설테니까. 야겐은 상냥히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미미한 변화였기에 카슈와 야만바기리 외에는 그다지 눈치를 채지도 못했다. 한창 소란스러웠던 아침 시간이 지나고, 야겐과 카센, 미츠타다가 빠져간 방 안은 너무도 넓어보였다. 어느새 점심도 지나고, 해가 지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카슈와 야만바기리, 그리고 종종 놀러오는 단도들과 방 안에서 얌전히 앉아 놀았다. 고코타이가 올 때는 토라 군과 함께 놀기도 했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카센하고 카슈하고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그녀가 꽤 생각에 깊이 잠겨있는 동안 카슈와 야만바기리는 그녀를 열심히 치장해주고 있었다. 입술에 붉은빛 연지를 바르고, 머리카락은 나비 장식이 달린 비녀를 꽂아 고정시켰다. 옷은 평소와 같은 무녀복이었지만 치하야가 조금 달랐다. 평소의 것은 하얀색이었는데 이것은 어째서인지 투명한 연분홍빛에 학이 아닌 나비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치하야를 한 번, 둘을 한 번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만바기리는 굉장히 쑥스러운 듯, "우리가 직접 주문해서 받아온 거다. 받아줘." 하고 모포를 푹 눌러쓰며 웅얼거리듯 말하였다. 그녀는 손짓으로 둘을 부르고는 둘의 목에 팔을 둘러 꼭 안아주었다. 고마워, 굉장히 마음에 들어. 그렇게 잠시 껴안은 후, 카슈가 살짝 떨어지고 야만바기리가 그녀를 안아들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야만바기리는 힘이 굉장히 강했다. 한 팔에는 그녀를 앉혀 받치고, 다른 팔의 손으로는 그녀의 눈을 살포시 가렸다. 카, 카슈? 야만바기리? 당황한 채로 그녀가 둘을 부르자, 카슈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고, 야만바기리는 안고있던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괜찮아, 옆에 있어.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꽂혔다.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착하다며 머리를 쓰다듬는 온기마저 익숙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멈춘 둘에게 어디로 온 것인지 물었지만 비밀이라며 카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야만바기리가 손을 내리고, 문고리를 잡았다. 반대쪽 문고리는 카슈가 잡았다.


"여기, 대연회장이잖아. 무슨 일로 온 거야, 여기는?"

"들어가보면 알아, 주인. 자, 연다? 하나, 둘-"


둘이 문을 동시에 열자, 폭죽 소리가 팡, 하고 울려퍼졌다. 회의실로 쓰이는 대연회장답게 한 쪽에 식탁이 길게 늘여져 있었다. 마치 뷔페식처럼. 그리고 안에 있던 남사들은 전원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외쳤다. 비난의, 욕설이 담긴 말이 아닌, 환영의, 축하가 담긴 말을.


"혼마루 취임을 축하합니다, 주군!"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경멸이 섞이지 않은, 환하고 밝은 미소. 야만바기리는 그녀를 여전히 안은 채로, 카슈를 옆에 두고 가장 상석으로 향했다. 예쁘게 꾸며져 있는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 나서 그녀의 왼쪽에 섰다. 오른쪽에는 카슈가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중요인물을 밀착해서 보호하듯. 연장자들 중, 그녀의 영력을 나눠받고 가장 침착한 둘, 이시키리마루와 미카즈키가 그녀의 앞에 나섰다. 둘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도, 웃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서는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올 것 같았지만 꾹 눌러냈다. 감정을 참는 것은 익숙했다.


"자아, 보려무나, 주인 아가. 이 많은 이들이 네 권속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란다."

"너무 쉽게 설득해버려서 조금은 김이 빠졌다고 해야 될까. 다들 너를 좋아한단다."


놀란 듯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둘에게 도움을 받아, 의자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가볍게 무릎을 꿇고 정좌로 앉아, 손바닥을 바닥에 마주댔다.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눈을 살포시 감고 작고 빠르게 말을 하였다. 지금 이곳에 수많은 이들에게 나눠주고자 하니, 나의 기도를 들으시어 응해주소서. 그렇게 웅얼거리듯 말한 그녀의 말을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이루고 있던 영력이 전 주인이 아닌, 현 주인인 그녀의 힘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즉, 그녀는 이곳에 있는 남사들의 권속이 될 것을 허락한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챈 이들 중, 츠루마루가 가장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화끈하네, 주인은!! 이 많은 인원을 이루고 있던 영력을 단숨에 주인의 것으로 바꾸다니. 이것 참 놀랍군, 그래!"

"츠루 씨, 놀라움은 주인 군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아주지 않을래?"

"이야, 미츠 도령은 여전히 차갑구만!"


단호한 건가? 츠루마루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미카즈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를 가볍게 안아, 의자에 앉혀주었다. 성급한 주인이로구나. 그렇지 않아도 모두가 대기하고 있었거늘. 하고 다정히 말하자, 그녀는 "어쩔 수 없는 걸. 저렇게 많은 남사들이, 나를 위해 모여준 거잖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 하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쩜 이리 마음씨도 곱구나. 미카즈키는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쿡쿡 웃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된 것을 느끼고는 눈을 살짝 감았다. 이제 이곳에서 느껴지는 영력 곳곳이 자신의 것이었다. 정말, 이제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인 것이었다. 사니와, 코하루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여러분. 그녀가 가볍게 인사를 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미카즈키는 본래 온 당일에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다들 서운해하고 있었다며 슬쩍 알려주었다. 그녀, 코하루는 일부러 인사를 하러 와준 둘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하였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고, 달이 뜬 것은 한참 전 일이 된 시각. 아무리 영력이 차고 넘치는 그녀라 한들 인간은 인간이었다. 의자에 앉은 채로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아이젠이 빠르게 담요를 하나 들고 와,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주인, 진짜 작다. 아이젠이 작게 중얼거리자, 옆에서 호타루마루가 그러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우자는 사요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있었다. 스탠딩 형식의 연회였으니, 사실 바닥에 앉든 어디에 앉든 자유였기에 사요의 옆에 앉은 것이었다. 지로타치는 얼마 없는 태도들 중 이치고를 제외한 태도들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형님. 주인은... 굉장히 다정한 것 같아.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빌어줬어."

"......그렇네요. 인간 치고는 다정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녀가 영력을 방출해낼 때, 그녀의 기도가 그들에게 살짝 스며들어갔다. 아프지 말고, 부러지지 말고, 건강하게 내 옆에 계속 있어주길. 성과를 잘 내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있어달라는 것이 그녀의 기도였다. 소원이기도 했다. 카슈는 그런 소원을 빌었던 거냐며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정말~! 어두우면 술 마실 맛이 안 나잖니?! 우리는 이제 그 아이의 권속이니 우리가 지키면 되는 거야! 뭐, 그러는 김에 예쁘게 꾸며줘도 될 것 같지만~?"


지로타치는 아하하! 하고 웃으며 술을 들이마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으며 그렇네, 하고 동의했다. 미다레와 카슈는 지로타치에게 꾸밀 거라면 자신들도 있다며 손을 번쩍 들었고, 그 모습에 다시 웃어보였다. 그녀가 그런 소원을 빌어주었으니, 이제 자신들의 차례였다. 그녀의 깊고, 숨겨진 상처를 치유해주고, 그곳을 자신들과의 추억으로 덮어주는 것. 그것이 이제, 자신들이 할 일이었다.



어여쁜 우리들의 주(主)여, 더이상 아프지 말고 그대를 닮은 꽃이 줄지어져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만 걸어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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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검들에 의한 사니와의 힐링물











야겐은 주인을 안아든채 성큼성큼 걸어가며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로 건강 상태에 관한 종류였으며, 야겐은 정말이지 훌륭한 의사라 할 수 있었다. 다른 도검들이 보았다면 어째서 그녀가 정화를 하러 갈 때 야겐을 가장 먼저 정화하려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녀의 초기도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 건너온 혼마루가 몇인데 그것을 모를 것 같냐며 화를 낼 것 같을 정도로 정말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그가 나쁜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저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식사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인스턴트로..."

"얼마나?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에 1/3......?"


그러고는 그녀는 한 적이 없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된 식사라 한들 대부분 인스턴트를 주문하여 그 날 먹을 것만 데워놓고 먹은 것이기에 제대로 된 식사는 이곳에서 한 것이 굉장히 오랜만에 한 것이었다. 야겐은 미간을 좁히고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었다. 그렇게 찌푸리면 주름 생겨요. 야겐의 미간을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펴며 작게 말하였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먹는 약은 있어?"

"으음... 없어요."

"요즘 기억력은 어때?"

"으음......"


조금 안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렇구나. 야겐은 가볍게 답하고는 어느 방의 문을 열었다. 어제, 해열제를 만들기 위해 들어왔던 약재를 모아두던 방이었다. 물론 야겐의 개인적인 연구실도 되었다. 이전 주인이었던 사니와가 만들어주고 간 것이었다. 이제 생각해보면 마지막 선물이었지만 다르게 보자면 현 주인인 그녀의 상태를 어림짐작 하고 있던 사니와가 만들어준 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야겐은 이 공간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사용하기로 했기에 여태까지 모아두었던 약재들을 전부 옮겨두었었다. 그것이 지금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그는 그녀를 큰 책상 앞에 놓여있는 여러 의자 중 하나에 앉혀주고 약재를 이리저리 꺼내보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대장, 지금 영양실조일 수도 있어."


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순간 따라가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말이냐 되물었다. 야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애석하게도 아까와 다를 것 없이, 영양실조일지도 몰라. 라는 것이었다. 사실 다른 혼마루의 야겐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야겐은 시대가 시대이기에 현대의 질병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대체로 좋은 사니와를 만난 야겐은 현세의 의학지식이 굉장히 풍부했다. 그것은 극을 달 수록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이곳의 야겐, 그러니까 그녀가 현재 물려받은 상태의 야겐은 극은 달지 못했어도 특은 달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에 얌전히 따랐다. 아무래도 당분간 식사는 인스턴트라던가 요거트 같은 것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정화의 일이 없어도 식사를 제대로 한 적은 없었지만.


'당분간은 제대로 된 식사일려나...'


그래봤자 죽일 것이 뻔했지만. 하고 그녀는 눈을 살짝 내리깔며 입 안에서 중얼거렸다. 야겐이 무언가를 만들며 잔소리를 하고 있음에도 그녀는 굉장히효율좋게 능숙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령, 아까 호박죽 향 나던데 먹고 싶다. 라던가. 야겐은 무언가를 그녀의 손에 꼭 쥐어주며 반쯤 무릎을 꿇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라고 해도 그녀의 눈에는 베일이 씌워져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마주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그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이거, 영양제야. 그러니까 적어도 밥 먹고나서 꼭 마셔. 알았지?"

"...네에."


착하다. 나이차 얼마 나지 않는 오라비처럼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어째서 야겐이 단도들 중 가장 맏형으로 불리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는 정말 다정했다. 다정함이라고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만 느껴보았던 그녀가 느끼기에도 다정했다. 이런 것이 다정함, 이었나?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정도였다. 초기도들도 다정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보호자에 가까웠으니까.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콘노스케에게 보고 받아야 되는데. 그녀는 결국 눈을 두어번 깜빡이고는 야겐에게 조심스레 부탁을 말하였다.


"그, 야겐. 아까 식당으로 데려다 줄 수 있어요...? 애들이 다른 분들하고 잘 지내고 있을지가 걱정이라..."

"물론. 대신 나도 이젠 대장의 검이니까 나한테도 편하게 반말로 해줘. 대장한테 존댓말로 들으면 뭔가 묘해져서 말이야."

"앗, 그, 네에......?"


아, 아니. 응. 그녀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웃더니 아까보다는 훨씬 안정감 있게 그녀를 안아들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모습이 다른 이가 보았다면 꼭 막내를 대하는 오빠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런 상상을 한 것인지 작게 미소를 지었고, 야겐은 그 미소를 보며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더 웃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심 감추었다. 일단 저 미소는 둘을 제외하고는 아마 최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만의 비밀로 해두기로 했다. 와중에도 그녀의 영력은 너무도 깨끗하고 깊어, 가까이 있기만 해도 치유되는 느낌이 강했다. 아아, 이래서 그 둘이 이렇게 싸고 도는 건가. 야겐은 홀로 깨달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슨 할 말이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한 편, 식당은 여전히 고요했다. 침묵이 가득했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뭐 잘못한 거 있나? 없을 걸. 대충 이런 내용이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이 말한 것이 충격적이었다는 소리며, 그들이 그녀를 그만큼 생각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미츠타다는 멍한 표정으로 식은 차를 따뜻하게 다시 우려내고 있었다. 츠루마루는 이런 놀라움은 필요 없는데. 라며 드물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단도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협차 중 일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물론 호리카와는 이즈미노카미를 달래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하다 생각 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나이에 그런 일을 시작했음에도 잘 자라주었다 칭찬해야 맞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카센의 주변에 모여들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험담은 아니었다. 험담은 험담이었지만... 오히려 정부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카슈와 야만바기리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물론 그것을 본 이는 그녀와 함께 식당에 들어오던 야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차를 다 끓인 미츠타다가 새로운 유자차를 주었고,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체했다. 할 말을 찾으려는 건지, 우물쭈물 하는 것 같더니 결국 카슈의 옷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초기도의 특권이라는 걸까, 카슈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정말이지, 너무도 잘 알아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 상황이었을 뿐. 조금은 제대로 얘기해줘도 이 녀석들은 기뻐할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성격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 것까지가 마지막 그녀의 용기라는 것을 알기에 들어주는 것이었다.


"에- 우리 셋은 별채 2층의 가장 안쪽 방에 있을테니까 용건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고, 따로 공지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출진도 원정도 없으니까 편하게 있으면 돼. 아마 이건 우리가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을 주려는 것 같은데... 정부가 괜히 블랙 정부가 아니니까, 너무 긴 휴가는 기대하지 마. 그러면 이걸로 끝."


카슈는 그녀를 안아들며 "심심하면 놀러 와도 돼. 그래야 우리가 익숙해지잖아?" 하고 덧붙이고는 대충 인사를 건네고 식당을 나왔다. 아니, 나오려고 했다.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진즉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던 것은 들려온 목소리가 현 혼마루 내에서 가장 연장자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정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본인 주장으로는 그랬다.


"아가. 그동안 잘 참아왔다. 훌륭히 자라주어 내가 고맙구나."

"맞아요! 잘 참았어요! 이제 괜찮아요! 우리가 지켜줄게요."


조용히 일어나며 미카즈키는 그녀를 향해 다정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뒤에서는 이마노츠루기가 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슈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미카즈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부끄러워서 그래. 하고 입모양으로 이야기를 한 후, 식당을 나섰다. 물론 그들이 나가자, 식당 안에서는 산죠 도파에 대한 야유가 쏟아졌다. 어떻게 젊은 애들을 뒤에 두고 나이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인에게서 점수를 따려느냐, 새치기는 안 되는 거 모르냐 등등 대부분 아와타구치 도파의 목소리였다. 물론 이치고의 목소리는 섞여있지 않았지만. 이마노츠루기와 미카즈키는 그저 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물론 종종 이마노츠루기 쪽에서 "주인님이 그렇게 좋다면 먼저 점수를 땄어야죠!" 하고 다른 단도들을 도발하는(?) 말을 한 탓에 소란은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았지만.


식당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카슈는 한 쪽 어깨가 축축해지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는 그녀의 뒷통수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기분이 어때? 모르겠어. 그의 질문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카슈의 목에 팔을 두르고 꼬옥 껴안을 뿐이었다. 이렇게 환영 받은 것이 얼마만인지도 몰랐다. 아니, 처음인 것 같았다. 그녀는 여태까지 재액을 정화하는 일을 해왔었고, 그럴 때마다 모두가 하나같이 그녀를 반기지 않았으니까. 무관심은 오히려 그녀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목숨을 위협받을 일은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환영을 받아버리면 그녀는 도저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다만 여태까지 둑으로 막아두었던 것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카슈와 야만바기리, 콘노스케는 그 현상을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별채에 도착하자 그녀는 이미 한참 소리를 죽여 울다 지친 건지 잠들어 있었다. 능숙하게 카슈는 항상 갖고 다니던 손수건에 그녀의 방에 조그맣게 딸려 있는 화장실에서 물을 묻히고는 베일을 벗겨, 눈가를 닦아주었다. 아마 정부 쪽에서는 담당자가 깨나 힘을 쓰고 있을 것이었다. 그녀의 담당자는 그녀의 사정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이였으니까. 사실 그녀의 과거를 아는 카슈의 입장에서는 그 담당자와 한 판 하고 싶었다. 진검으로 하는 대련이라던가.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이런 일에 끌어들인 것이 그 담당자였으니까! 다만 그런 일을 했다가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 슬퍼할 것을 알기에 꾹 참고 있었다. 그녀가 나아지고,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꾹꾹 눌러담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때보다 굉장히 잘 지켜지고 있었다. 카슈와 야만바기리, 콘노스케는 서로를 비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정부의 시스템을 갈아엎어보자. 이전에 했던 다짐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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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혼마루들 정화 사니와 & 임시 사니와 → 현 혼마루의 사니와」 로 왔다는 설정
* 검 → 사니
* 창작 사니와 (드림주)
* 아마 검들에 의한 사니와의 힐링물

* 키 수정









기나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도검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하고,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이미 정리를 마치고 산책을 하고 있는 도검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천하오검 중 하나이자, 산죠 도파의 검인 미카즈키 무네치카였다. 음, 오늘도 날씨가 좋구나. 미카즈키는 작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전 주인이 있었을 때보다 맑은 공기에, 푸른 하늘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눈 안에 가득 담긴 것은 그녀가 잠들어 있는 별채였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은 건가, 싶었다. 슬슬 식사시간이었기에 그는 그녀에게 인사를 가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산책은 이정도로 충분했다.


"오오, 오늘도 진수성찬이로구나."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운데?"


식단을 보고, 그는 웃었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대체로 요리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간혹 닛카리 아오에라던가 카센 카네사다가 도와주기도 했지만 주로 담당하는 것은 쇼쿠다이키리였다. 다른 도검들의 식사 분배가 다 끝나고 나서야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으니, 가벼운 호박죽을 만들었다. 대충 거의 완성이 되어갈 때 즈음, 야만바기리가 식당에 발을 들였다. 그에게 가장 먼저 다가간 것은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던 미카즈키였다.


"그래, 주인의 상태는 어떤고?"

"사니와 님께서는 지금 현재 상당히 좋은 회복조에 들어가 계십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자리잡았다. 야만바기리의 목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그들의 전 주인에게도 있었던 작은 여우의 목소리였다. 야만바기리의 어깨에 익숙한 듯 자리잡고 앉아 있는 작은 여우를 보고 미카즈키는 작게 웃었다. 처음보는 여우로구나. 이 본성에 여우가 늘어난 겐가? 장난 섞인 목소리였지만 나키기츠네의 여우는 진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여우 동지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요!" 하고 낭랑한 목소리를 내보였다. 정부에서 사니와에게 한 마리씩 내어주는 이 여우는 일명 콘노스케로 불리었다. 대체로 정부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녀의 콘노스케는 조금 달랐다. 그녀를 위해 정부에게 항의를 하러 가기도 했으니, 다른 것도 너무 달랐다 해야겠지.


"어제 미카즈키가 돌아가고 나서 갑자기 돌아왔길래."


콘노스케는 야만바기리의 어깨에서 가볍게 내려왔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빈 의자에 폴짝 올라가 앉았다. 여우는 한 번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를 찾는 것인지 금세 눈치챈 야만바기리가 "지금 주인을 보살피고 있다. 어제 또 쓰러져버려서." 하고 가볍게 답해주었다. 콘노스케는 그렇습니까. 하고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도검들에게 시선을 돌려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야만바기리 쿠니히로 님과 카슈 키요미츠 님께서는 이미 사니와 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셨으니 상관이 없지만 다른 남사분들은 어떠신가요?"

"......"


난 찬성~! 하고 밝게 말하며 손을 든 미다레 토시로를 시작으로 단도들은 지금의 주인 같은 주인이라면 대환영이라며 즐거운 듯 웃었다. 츠루마루 쿠니나가 역시 지금 쓰러져 있는 약한 주인이라면 재밌을 것 같으니 찬성하겠다며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이치고 히토후리, 미카즈키 무네치카 역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재 현현한 도검들 중 가장 연장자라 할 수 있는 셋이 찬성하였으니 이미 주인으로 자리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아직까지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없는 헤시키리 하세베를 제외하고. 유독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검이기에 모두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에게 그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정작 헤시키리 하세베 본인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었지만.



헤시키리 하세베는 실제로 충성심이 굉장히 강한 검이다. 어느 혼마루에 있는 동소체라고 한들 그 점은 변하지 않았다. 전 주인은 불미스러운 일로 혼마루에서 나가게 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인간이었기에 수명이 다해, 사니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기에 후임에게 물려주고 간 것이었다. 다만 전 주인은 후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었던 것인지, 근시였던 헤시키리 하세베에게 "그 아이가 온다면 잘 부탁할게. 상처가 많은 아이야. 나보다 훨씬." 하고 드문 부탁을 하였다. 그랬기에 주군으로 섬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성심성의껏 보살필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녀가 두 도검을 데리고 처음 이 혼마루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가진 영력의 맑음의 정도나 양을. 그랬기에 상당한 베테랑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탓에 그저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하에 한 행동이었다. 실제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온 첫 날부터 별채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나온다 한들 카슈 키요미츠나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에게 안겨있는 채였으니까. 홀로 나왔을 때는 다른 남사들과 마주친 그 즉시 바로 도망치기 바빴다. 이 정도면 거의 도검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노골적인 피함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제 밤,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그녀에게 있었으며,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이 그랬기 때문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때, 자신의 주인... 아니, 이제는 전 주인이 된 사니와가 한 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상처가 많았다. 신체적인 상처든, 심리적인 상처든. 그것을 두 도검이 어찌저찌 감싸주고는 있었지만 불안불안한 상태였다. 그것을 전 주인은 알고 있었기에 자신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해서라도 다가갈 것을 그랬다며 홀로 자책하고 있었다. 거의, 혼마루의 땅에 지하를 파고 들어가,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놀랄 정도의 땅굴을 파고 있었다.



"나는 적어도 일단 치료부터 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만."


헤시키리 하세베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주인이라 인정하지 않은 이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던 그가 다른 이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 말은 곧 그녀를 주인으로 인정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식당에 모여있던 그들은 밝게 웃었다. 부엌에 있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하세베 군!! 하고 외치며 밝은 얼굴을 보일 정도였다. 콘노스케는 그들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남사 분들이 여러분들이라 정말 다행입니다. 하고 밝게 말하였다.


"먼저 사니와 님께서 이곳으로 발령 받으신 이유부터 읊어드리겠습니다."


콘노스케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정부에서 내민 형식적인 이유는 요양입니다. 실제로 사니와 님은 현재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치신 상태니까요. 모두가 걱정하고 있던 부분을 여우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였다. '형식적인 이유' 라는 것은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는 소리였기에 얌전히 태클을 걸지 않고 듣고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사니와 님의 영력이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굉장히 맑고 깊습니다. 양도 많지요. 정화 쪽에 파견될 사니와는 많습니다. 다만 이렇게 혼마루를 관리할 수 있는 사니와는 몇 없는데, 이곳에 계신 사니와 님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무려 9살 때부터 교육을......"

"그만."


야만바기리가 급하게 여우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야만바기리는 이마를 짚었다. 이럴 줄 알았기에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인데. 자신도 이 입이 싼 여우 덕분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모르는 쪽이 나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여우가 다 불어버릴 줄이야. 야만바기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혼란스러운 이들 사이에서 먼저 정신을 차린 이들은 꽤 연륜이 있는 미카즈키 무네치카, 이치고 히토후리, 츠루마루 쿠니나가와 본래부터 상당히 침착한 성질을 가졌던 야겐 토시로,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카센 카네사다, 이시키리마루였다.


"하하, 여우도 상당히 농담을 잘 하는구나. 그런 농담은 하지 않는 편이 어떤고?"

미카즈키 무네치카


"그렇네요. 질이 나쁜 농담은 사양이랍니다."

이치고 히토후리


"하하하! 이거 놀랐는데? 농담이지, 당연히?"

츠루마루 쿠니나가


"난 또 진담인 줄 알았군. 대장이 그런 어릴 적부터 이런 일을 위해 교육을 받았을리가 없지."

야겐 토시로


"그냥 고생해서 몸이 약한 거겠지, 주인 군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정말 우아하지 못한 농담이었구나."

카센 카네사다


"하하. 그래도 적어도 어느정도 나이가 든 다음부터 시작했겠지."

이시키리마루


정신을 차린 도검들이 한 마디씩 던지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쪽은 이번에는 콘노스케 쪽이었다. 사니와 님은 7살 때부터 사니와 쪽에 재능을 보이셔서 조금씩 교육을 받으시다가 9살 때 본격적인 교육을 받으신 건데요? 명량하지만 사무적인 콘노스케의 목소리에 애써 부정했던 것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도검들은 전부 벙쪄 있었다. 야겐이 겨우 고개를 돌려 해명해보라며 야만바기리를 바라보았지만 모포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것으로 이미 답은 다 된 것이었다. 그녀는 7살 때 재능을 보여, 여태까지 그 일을 해온 것임을 모두에게 각인시키는 효과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뒤늦게 들려오는 카슈 키요미츠의 목소리에 야만바기리는 황급히 그의 뒤에 숨었다. ...물론 뒤에서 보인 익숙한 시선에 바로 몸이 굳어버렸지만.


"......음? 카슈, 지금 안고 있는 그 이는..."

"아아, 우리 주인. 자, 주인. 인사하고 싶어서 일부러 나온 거잖아? 모두를 바라보고~ 그렇지."


어린아이를 달래듯 품에 안겨 있던 그녀를 살살 달래며 품 속에서 몸을 돌리게 만들었다. 카슈의 품에 있음에도 굉장히 작아보이는 그녀는 검은색의 베일을 쓰고 있었다. 베일은 눈만을 완벽히 가려주었고, 덕분에 그녀의 눈을 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콘노스케. 작고 어딘가 거친 목소리가 여우를 불렀다. 네, 사니와 님! 하고 여전히 명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다가간 여우에 의해 그 목소리가 그녀의, 주인의 목소리임을 실감 할 수 있었다.


"내가 분명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보고는 이따가 들을게, 콘노스케. 하고 가볍게 여우의 말을 잘라버리고 그녀는 앞의 도검들을 바라보았다. 여우는 다시 야만바기리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아무래도 그곳이 가장 익숙한 듯 보였다. 그녀는 심하게 떨리는 손을 반대쪽 손으로 꽉 쥐었다. 그래봤자 양손 다 떨고 있었기에 효과는 없었지만. 살짝 걱정되는 듯 카슈가 "내가 할까?" 하고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한다는 고집이었다. 그런 그녀를 조금이라도 진정시켜준 것은 미카즈키가 건네준 차였다. 따뜻할 때 마시렴. 우려낸 것은 내가 아닌 저 쪽에 있는 쇼쿠다이키리지만 말이야. 어느새 부엌에서 나와 손을 흔들고 있는 미츠타다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자, 이번엔 이치고 히토후리와 야겐 토시로, 호네바미 토시로를 제외한 아와타구치들이 다가와서는 단 과자라던가 다과를 그녀와 가장 가까운 탁자 위에 올려두고 쪼르르 사라졌고, 고코타이는 아기 호랑이를 품에 살포시 얹어주고는 이치고의 뒤로 가 숨어버렸다. 그 모습에 긴장이 확 풀려버린 건지 그녀의 몸에 힘이 쭉 빠진 듯 했다. 카슈는 그것을 곧바로 캐치해서는 제대로 고쳐 안고는 컵은 제대로 들어야지, 주인. 하고 작게 웃었다. 응. 하고 가볍게 돌아온 대답에 카슈는 살짝 안심했다. 이대로 말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기에 그런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나서 들었습니다. 카슈와 야만바기리가 쓸데없는 내용까지 전했다고 그러던데, 밤 중에 모이게 하여 고생하게 한 것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상황을 보니... 콘노스케가 또 이상한 쓸데없는 내용을 말한 것 같은데, 그 점 역시 사과드릴게요." 


길어질 것 같으니까 앉혀줄게. 카슈는 아와타구치들이 건네준 것이 있는 탁자의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그녀를 앉혀주었다. 그녀는 작고 마른 손으로 카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며, 매번 고마워. 하고 감사인사를 전하였다. 초기도와 주인 사이에 형성된 묘한 신뢰관계였다. 보호자와 아이 같은 느낌의 신뢰관계였다. 그녀는 쇼쿠다이키리가 타주고, 미카즈키가 건네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달다. 미지근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입에는 딱 맞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작게 기침을 하고 찻잔을 내려두었다. 모든 것에 대해 본인이 설명을 하겠다는 의지임을 카슈와 야만바기리는 알아보았다.


"일단 저는 콘노스케가 말한대로 7살 때 재능을 발견하고 9살 때 정식적인 교육 절차를 밟은 상당히 베테랑에 속하는 사니와입니다. 처음 카슈 키요미츠를 현현시킨 후, 고코타이와 닛카리 아오에, 두 사람의 동소체를 현현시켰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호리카와 쿠니히로의 동소체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카슈는 그 이후로 꽤 과보호를 시작했습니다. ...야만바기리도 그걸 들은 건지, 과보호를 하더군요."


아니, 그건 당연한 거잖아. 카슈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도검들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자신들이 저 소녀의 초기도였어도 과보호를 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아파보였고, 아팠다. 치료가 굉장히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것을 정작 본인만이 모른다는 것을 그들은 답답할 따름이었다. 치료라도 받겠다고 나서준다면 좋을 터인데, 그럴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녀의 혼잣말 같은 조용한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렇다고 여러분들께 죄책감을 가지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여러분은 동소체일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고코타이와 닛카리, 호리카와 세 사람 다 볼 일이 있다면 언제든 들려주세요. 이 점은 카슈가 굉장히 과보호를 하는 바람에 생긴 참견이니."

"참견이라니, 너무해, 주인...! 오히려 과보호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생각하는데요, 나는! 그렇지, 야만바기리?!"

"아, 아......? 아아. 그렇군..."


참견이고 과보호야.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카슈는 계속해서 툴툴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15년 밖에 살지 않은 꼬마가 다른 남사들 정화하러 가는데 도와달라고 하면 과보호 안 할 도검이 어디에 있겠어? 초기도가 내가 아니었어도 다들 그랬을 걸. ...라는 식으로 계속 짹짹거렸다. 물론 카슈의 그 투덜거림에 그녀는 깔끔하게 "정부가 그렇잖아." 하고 답하였고, 카슈는 "그건 그렇지만..." 하고 웅얼거리며 중간중간 야만바기리에게도 동의를 구했는데, 그럴 때마다 무조건 동의하는 모습이 꼭 멍하니 있다가 의견을 물었을 때 답하는 식이라 조금 웃음이 나왔다. 와중에 미카즈키는 흐음, 하고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인 아가, 내가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찮겠누?"


아가...? 호칭에 표정을 살짝 찌푸렸지만 다른 동소체들도 그녀에게 아가라 부른 적이 있었던 덕인지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질문이 생긴다면 무엇이든 답해줄 의향이 있었다. 아무리 싫어도 이곳은 이제, 자신의 혼마루였으니까. 고코타이가 올려주고 간 호랑이 한 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에 그녀의 분위기마저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아가의 이야기에서는 9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총 6년 정도의 기억이 빠져 있는데 그 부분은 어찌 되었는가?"

"그 때는 뭐...... 콘노스케랑 둘이서 정화하고 다니고......?"

"솔직히 주인은 과보호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카슈가 옆에서 그렇지?! 하고 맞장구를 치고, 다른 도검들은 정말 말 그대로 멍하니, 혹은 이마를 짚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유를 모른채, 그저 고개만을 갸웃거리고 있다가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야겐이 일단 진찰부터 받자며 성큼성큼 다가와 안아들었다. 살짝 휘청하다가 제대로 안아든 야겐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 뒤의 초기도들(...?)을 "너네......" 하고 말 끝을 늘어트리며 사납게 노려보고는 식당을 빠져나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도검들 중 단도들은 야겐이 왜 저러는지에 대해 저들끼리 소근거리다가 결국 나마즈오 토시로가 둘에게 물어보았다.


"야겐이 왜 저러는지 알아?"

"아마 너무 가벼워서 그랬을 걸? 저 정도 키에 그 정도 무게인 인간은 거의 없을테니까."

"얼마나 가볍길래?"


중간에 끼어든 것은 미다레였다. 미다레! 하고 나마즈오가 툴툴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금세 시선을 돌려 둘을 바라보았다. 야만바기리와 카슈는 고민하는가 싶더니 주변을 슬 둘러보고는 둘이서 소근거렸다. 적당한 후보를 찾고 있는 듯 보였다. 얼마나 당황스러웠으면 그 야겐이 휘청거릴 정도였는지 궁금했던 도검들은 그저 가만히 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만바기리가 미다레 토시로를, 카슈가 사요 사몬지를 불렀다. 갑자기 호명된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총총 앞으로 나갔다. 저 둘로 대체 무얼 설명하려는 것인지 몇몇은 눈치를 챈 듯 보였다.


"일단 주인의 키는 이 녀석보다는 작은데 대충 이정도라고 하면..."

"몸무게는 으차. 사요 사몬지 정도. 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겠어?"


카슈가 사요를 가볍게 안아들며 말하였다. 동시에 이미 눈치를 채고 있던 몇 도검은 한숨을 내쉬었고,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도검은 벙 찐 채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오늘따라 충격을 받을 일이 많은 시간이었다. 아직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카슈는 사요를 내려주고 둘을 보며 이제 들어가봐도 된다 말하였지만 둘 역시 상당히 충격을 받은 건지ㅡ솔직히 사요는 안긴 것에 대한 충격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ㅡ멍하니 둘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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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혼마루들 정화 사니와 & 임시 사니와 → 현 혼마루의 사니와」 로 왔다는 설정
* 검 → 사니
* 창작 사니와 (드림주)
* 아마 검들에 의한 사니와의 힐링물






카슈가 사니와를 돌보고 있을 때, 야만바기리는 이미 남사들이 모여있을 대련장에 향했다. 도착했을 때는 정말 고맙게도 야겐이 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아마 꽤 오래 지났기 때문이겠지. 그녀가 있는 곳은 별채였고 이곳은 본채에서도 조금 바깥에 가까운 안쪽에 있는 곳이었으니까. 야만바기리가 들어가자 쏟아지는 질문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주인님은 괜찮은 건가? 아프다고 들었는데 많이 아픈 건가? 대부분 이런 내용으로 그들이 얼마나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훤히 드러나는 질문들이었다. 당황한 야만바기리를 구해준 것은 이치고와 미카즈키였다.

"자자, 다들 그렇게 한 번에 물어보면 그가 곤란하잖니?"
"그래, 진정하려무나. 그도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온 것 같으니."

얌전히 돌아가는 검들을 보며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하진 않으나 현재는 말을 해줄 수 있는 것이 그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앞에 섰다. 두어번 정도 입을 열었다 닫으며 무엇부터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가장 앞에서는 미카즈키가 츠루마루와 차를 마시며 괜찮다며, 천천히 말해도 된다는 듯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긴장이 풀렸지만. 일단 다들 야겐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현재 주인이 열이 많이 오른 상태다.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야만바기리는 이어 말했다.

"다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주인은 원래 그렇게 종종 아팠으니까. 카슈가 붙어 있겠다고 했으니 걱정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저기 저기,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괜찮은가요~?"

이마노츠루기였다. 아이의 옆에는 고코타이와 나마즈오 토시로, 미다레 토시로가 나란히 앉아 똑같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저리도 같은 표정을 지을 수가 있는지. 야만바기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그녀가 아팠을 때 카슈가 설명해주었던 것을 그대로 읊어주기 위해서.

"......다른 혼마루를 정화하고 다니다보면 긴장과 동시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 탓에 컨디션이 좋지 못하게 되고, 그 상태로 일을 강행하다보면 어느순간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발열(発熱)로 인해 앓아 눕는다. ...라고 카슈가 예전에 설명해주었다. 이걸로 답이 됐을까."
"흠, 그렇다면 고도의 정신력 소모와 스트레스로 인한 몸살이라고 보면 되겠구나."

미카즈키가 가볍게 한 줄로 요약해주었다. 야만바기리는 아마 그것이 맞을 것이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대체로 단도들 사이에서 수근거림이 일어났다. 그 사이에는 협차(脇差)도 끼어 있었다. 타도(打刀)들 사이에서도, 몇 없는 태도(太刀)와 대태도(大太刀)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럼 주인은 여태까지 계속 긴장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는 소리인가? 호네바미가 손을 들고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아마 그렇겠지. 야만바기리 역시 가볍게 답했다. 

"그럼 주인 군이 여태까지 방을 나오지 않는 것도?"
"그건 아마... 이전에 했던 일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야만바기리가 시선을 슬쩍 피하며 쇼쿠다이키리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다시 한 번 웅성거림이 크게 일었다. 대체 그 일이 무엇이었길래 방에서조차 결계를 치고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한 이가 딱 둘 뿐인 것인가. 그런 생각이 확 들었다. 큰 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야만바기리 대신, 야겐이 큰 소리로 그들을 집중시켰다. 아마 우리를 여기에 모은 것도 그거에 대한 설명을 해주려고 모은 것이겠지! 집중해! 단도인 탓에 살짝 작아보이는 키 대신, 역시나 그답게 굉장히 박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고맙다는 듯 야겐을 향해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주인이 이전에 하던 일은 다른 혼마루의 정화를 담당하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새 주인이 올 때까지 그곳을 지키는 임시 주인의 역할도 했었지. 카슈는 종종 누군지 모를 이들을 '그 녀석들'이라 칭하며 꽤 화를 냈었지. 아마 주인이 그 일을 하게 된 것도 '그들'의 원인이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현 주인이 그런 일을 했었다는 충격인지, 그런 일을 하는 사니와가 있다는 충격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충격 탓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물게 미카즈키와 이치고, 츠루마루마저 당혹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야겐 역시 마찬가지였고. 야만바기리는 작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이어 말했다. 자신이 현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나는 야만바기리 쿠니히로. 아시카가 성주 나가오 아키나가의 의뢰로 만들어진 칼이다. ......야만바기리를 본떠서 말이지."
"응, 알고 있어. 어서와, 야만바기리. 사실 슬슬 카슈 혼자서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 중이었거든."

주인은 나를 현현시켰을 당시 조차도 단도 하나 없었다. 있었던 것은 초기도인 카슈 키요미츠 뿐이었지. 그것이 조금 신경쓰여 그 날 그에게 주인이 자고 있을 때 물어보았다. 주인에게는 어째서 단도가 하나도 없느냐, 고. 알고 있기로는 초기도와 단도, 총 두 자루의 검이 기본적으로 배정되었을 것이 당연할 터인데 단도가 없었으니까. 카슈는 나를 방 밖으로 끌고 나가 답해주었다. 그 때는 전혀 몰랐지. 그런 질문이 주인에게 있어서 큰 상처가 될 줄은.

"주인은 원래 협차 한 자루, 단도 한 자루를 갖고 있었어. 나를 포함해서 총 세 자루. 다 부러졌어. 나 빼고. 그러니까 이름이..."

고코타이와 닛카리 아오에. 그 둘이라고 답해주었다. 그 둘이 현현한 것이 하필이면 임무를 받기 직전이었기에 현현을 하자마자 임무에 뛰어들었다더군. 당연히 그곳 역시 주인의 정화하는 영력이 필요한 혼마루였고. 그곳의 검들은 주인이 잘 때 즈음, 주인을 노리고 몰래 침입했었다. 그것을 막느라 그 둘이 파괴되었다...고 그가 말해주었지. 그들을 부러트린 검은 아마... 호리카와 쿠니히로. 였다고 들었다. 카슈는 아직도 그 날의 주인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더군. 평소에 밤에 암살 위협을 받는 것은 일상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두려움을 보이지 않던 주인이 그 때만큼은 감정을 얼굴에 한 눈에 드러나게 담았기에 잊을 수 없다고도 덧붙였지.


그는 자신이 이렇게 길게 말하는 것은 또 오랜만이라 생각하며 눈을 잠시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코타이는 거의 단도들에게 둘러싸여 끌어안겨 있었고 닛카리는 이시키리마루에게 토닥임을 받고 있었다. 호리카와는 이즈미노카미에게 거의 안겨있다시피 있었고. 야만바기리는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인상이 좋았던 주인이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슬퍼해줄 이유가 있는 것인가. 자신이나 카슈라면 오랜 기간동안 함께 했었으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다시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알았으니까 주인 앞에서 그런 소리는 하면 안 된다, 너?"
"...당연한 것을."

아마 단도와 협차가 파괴된 이후로 주인은 악몽을 심하게 꾸는 듯 했다. 그럴 때면 카슈가 주인의 손을 잡고, 괜찮다고 말해주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악몽을 아예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슈에게 듣기로는 꽤 많은 혼마루들이 주인의 손에 의해 정화되었다고 하더군. 그 중에는 전 주인의 시체가 그대로 남아있는 혼마루, 파괴 직전인 오염도가 심각한 검들이 남아있던 혼마루, 그 두가지가 복합적으로 있는 혼마루 등. 그 중에는 이곳에 있는 동소체도, 나의 동소체도, 카슈, 그리고 이곳에 아직 현현하지 않은 검들의 동소체가 있는 곳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고 해야겠지. 그리고 그들은 주인을 공격했다. 도검들의 정화가 끝나면 주인은 스스로의 상처를 치료할 틈도 없이 임시 주인의 일을 처리해나갔다. 그러다가 쓰러지면 내가 본 것으로는 최소 이틀에서 나흘 정도는 쓰러져서 일어나질 않더군. 카슈의 말로는 일주일동안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주인이 눈을 가리고 있어서 나는 본 적이 없지만 우연히 본 적이 있는 카슈는... 인간들 사이에 있었을 적에 상당히 고생했을 것 같다더군.

"너는 주인의 나이를 아는가?"
"응? 주인 나이는 왜?"
"...너무, 어린 것 같기에. 걱정이 되어서...... 뭐냐, 그 눈은. 나같은 사본의 걱정은 필요 없다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헤에... 확실히 그렇네. 주인은 인간들로 치면 이제 막 성인의 범주에 들어갔으니까. 아, 그래도 너 올 때도 성인이었다?"

우리는 몇 세기 전에 만들어진 검들이기에 나이는 주인보다 많겠지만 주인은 엄연히 인간들 사이에서는 성인의 나이를 갖고 있다. 내가 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 때도 주인은 성인의 나이였다. 다만 카슈는

"그게 무슨...?"
"음... 아. 내가 처음 주인 앞에 현현했을 때는 주인은 그 때 혼자 이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성인의 범주에 들어가기 전이었어. 1...5이었나...?"
"뭐......?"
"정말이야. 거짓말 하나도 안 섞은."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사실 그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사본인 나보다 감정이라는 것을 듸욱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겠지.



야만바기리는 숨을 다시 고르게 내쉬었다. 그렇다면 주인은 우리에게 두려움이란 감정을 갖고 있겠구나. 감수성이 풍부한 도검들의 훌쩍임 소리 사이로 미카즈키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맞아. 하고 가벼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키요미츠!"
"카슈.  주인은?"
"여, 야스사다. 지금 주인은 드물게 악몽 없이 자는 중."

드물군. 이곳에 온 뒤로 처음 아닌가? 맞아. 처음이야. 야만바기리와 카슈(야스사다를 안고 있었다. 아마 훌쩍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의미를 담은 한숨이었다. 야만바기리는 머리에 쓰고 있는 모포를 푹 눌러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슈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 그가 어딜 가려는 것인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난 주인 곁에 가보도록 하지."
"나머지는 맡겨줘. 이래보여도 주인 곁에 있던 걸로는 최고참이니까."

야만바기리가 나가자 카슈에게 질문이 들이닥쳤다. 으아아,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카슈를 대신해 최고령이던 미카즈키는 천천히 질문하라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답한 질문은 야스사다의 질문이었다.

"주인은 정말 이제 막 성인인 거야?"
"응. 내가 현현했을 때는 15라고 했었으니까. 그 녀석들하고 혼자 싸우고 있는 콘노스케의 말로는 그 전에는 혼자 했다고 하던데."

그 녀석들이 누구야? 모두가 한 마음으로 카슈를 바라보았다. 어... 하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괜찮겠지. 야만바기리에게 말하지 말라는 주명이었고. 하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흠. 하고 잠깐의 헛기침 후, 말을 이었다.

"너희도 전 주인이 있었으니까 들어는 봤을 거야. '시간 정부'. 어린 주인을 데려와서 교육을 시키고 사니와로 만든 것이 그 녀석들. 그리고 주인이 현재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

심적으로 쉴 틈 조차 주어지지 않고 임시 주인 직이 끝나면 바로 다른 혼마루의 정화로 그녀를 돌리기 바빴다. 실적이 좋아 쌓인 돈은 많았지만 어릴 적에 끌려왔기에 사니와 교육만을 받고 자란 그녀가 돈을 쓰거나 하는 방법 따위 알 리가 없었다.  알고 있다고 해도... 쓸 시간이 그녀에게 과연 있었을까.

"그리고 아까 것에 덧붙이자면, 주인은 너희를 무서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도검이 무서운 거야. 그게 그 소리인가? 주인과 우리가 만난 새 도검들은 항상 우리를 공격했지. 알다시피 사니와에 대한 반감이 컸으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주인이 상처를 좀 많이 받았어. "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카슈의 목소리는 침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카슈의 품을 나와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야스사다의 얼굴은 다시 울상이 되어있었다. 미카즈키는 주변의 어린 도검을 달래고 있었고, 이치고는 동생들을 달래고 있었다. 그들은 저들을 피하는 것이 단순히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자신들이 더욱 열심히 다가간다면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막연한 생각이었을 뿐이라는 것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카슈는 침울해진 그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도 이런 녀석들이라는 걸 알아주면 좋을텐데. 뱌라서는 안 되는 소원이 둥실 떠올랐다. 다만 침착하게 몇 자루를 골라냈다.

"고코타이랑 닛카리, 호리카와는 당분간 주인 곁에 가지 않는 게 좋아. 너희 보면 주인은 괴로워 할테니까. 너네탓이 아닌 건 주인이 누구보다 잘 알아. 다만... 심리적인 문제인 거지."

침울해하는 셋의 모습에 괜찮아질 거라며 카슈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들 중 그녀를 가장 걱정하는 것은 카슈일 것을 다들 알기에 그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카슈는 이어, 야스사다를 보며 약간의 부탁같은 말하였다. 어딘가, 조금은 미안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 것은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주인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자신의 소꿉친구와도 같은 이에게 상처 받을지도 모르는 말을 해야 했으니까.

"야스사다는... 한동안 나랑 같이 다닐래? 나랑 같이 있으면 주인도 안심하고 너랑 만나줄 수도 있고."
"나는 상관 없어!"

의외로 야스사다는 밝게 웃으며 동의해주었다. 그 모습에 카슈는 살짝 안심하기까지 했다. 이유를 묻는다면 답해주지 못할 것은 없지만 여린 저 친우가 상처받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동소체는 많지만 이곳의 도검들은 다들 한 자루 씩이었기에 야스사다 역시 한 자루였다. 그랬기에 오히려 더 잘 알 수 있었다. 카슈는 이후, "내가 여기서 제일 신입이라 잘 모르겠는데 식사라면 주인 것은 당분간 죽으로 해줘." 하고 부탁하고는 겨우 죽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는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부터 몸이 좋지 않았기에 죽을 시도때도 없이 먹었지만 이제야 조금 괜찮은 것 같아 식사를 주려 했더니 다시 죽으로 돌아와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숨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몇가지를 꼽아보더니 아, 하고 작게 소리를 냈다.

"미카즈키 무네치카, 츠루마루 쿠니나가, 이치고히토후리. 세 자루는 가끔이라도 좋으니 주인한테 가서 말 동무 좀 해줘. 물~론!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검은 나지만! 셋도 꽤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 근데..."
"음?"

이야기 해야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 보이는 그를 보며 미카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를 재촉한 것은 츠루마루였고. 뭔데? 얼른 말해달라는 듯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해주었다. 주인이 처음에는 답을 아예 안 할지도 몰라. 그래도 느긋하게,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해줘. 일방적으로 전하는 이야기라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살짝 미안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주인이 받은 상처로 인해 그들이 상처받을 것을 염려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그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든 견뎌낼 생각이었다. 다만 주인의 상처가 그들이 입힌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 입은지를 몰랐으니, 어떻게 보듬어주어야 할지를 몰랐다. 별 수 없었다. 서로 지내온 환경이 달랐으니까. 이제 막 그 한 걸음을 내딛은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듣고 있었다.

"저기, 그럼 다른 녀석들은 아예 데리고 가면 안 되나?"

츠루마루였다. 아마 익숙해지고 나면 인원 몇을 데리고 이야기를 나누러 갈 생각인 듯 보였다. 카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주인이 셋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난 다음에는 괜찮을 거라 생각해." 하고 답해주었다. 츠루마루는 밝게 웃으며 고맙다며 답하였고. 미카즈키는 그들의 모습을 그저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정말 연장자 답게 웃어보였다. 이치고는 여전히 단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아마 주인님한테 갈 수 있게 되면 자신부터 데려가달라고 요청하는 듯 보였다. 그것을 그는 한 명 한 명 달래주고 있었고, 야겐은 이마를 짚고 있었다.

"그 정도면 주인을 만나러 갈 때 주의사항도 있을 것 같은데?"
"정답."

카슈는 웃으며 장난스레 미츠타다를 가리켰다. 그가 이렇게 웃고 있는 이유 조차도 분위기를 더 어둡게 만들어 주인에게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임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그랬기에 그 장난에 모두가 웃어주었고. 그들에게 현 주인은 알게 모르게 이미 그들의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혼마루에 온 사니와라고 해서 모두 그들에게 주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들 전원에게 쉽게 주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녀의 맑고 깊은 영력이 그녀가 혼마루에 발을 들이자마자 공기마저 맑게 변하게 해버렸으니까.

어흠, 하고 카슈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먼저, 주인의 방에 갈 때는 문 앞에서 누군지 말하고 들어갈 것. 그리고 반드시 무장을 전부 해제하고 갈 것. 원정을 다녀온 결과라던가 출진의 결과라던가 보고를 할 때도 마찬가지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정말 급할 때. 가령... 그래, 적들이 혼마루에 들어왔을 때?"

"그럴 때는 진짜 급할 때잖아, 키요미츠..."


야스사다가 기운빠지는 듯 말하였다. 아하하, 그렇네. 카슈는 그저 웃어보였다. 실제로 주인에게는 그 정도가 아니면 무장을 하고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았다가는... 그녀가 지금보다 더 경계하고 두려워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룰이 필요했다. 무장을 하지 않고 만난다는 룰이. 순간 카슈는 그들이 이해해주지 않았다면, 하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이곳에서 이러날 일이 없었다. 그러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주인의 허가 없이 주인을 건드리지 말 것. 주인이 쓰러졌어도 마찬가지야. 쓰러졌다면 나랑 야만바기리를 반드시 불러. 꼭 건드려야한다면 반드시 의사를 물어볼 것. 이 정도만 지켜준다면 괜찮아."


모두가 명심하듯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알고 있는 듯 보여 카슈는 살짝 안심했다. 주인은 지금 좀 어떨려나. 하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니 가보지 않겠는가? 하고 미카즈키가 옆에서 웃고 있었다. 아마 주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겠지. 그는 잠시 고민했다. 괜찮을까? 물론 주인이 괜찮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리고 고민은 잠시였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어차피 보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같이 갈래, 미카즈키?"

"음? 나도 말인가? 좋지."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까 다들 해산하자. 해산. 카슈가 손벽을 짝, 하고 소리나게 치며 외쳤다. 그제서야 피곤함을 느낀 도검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야스사다는 카슈를 보며 늦지 않게 오라며 웃었고 카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어보였다. 미카즈키와 카슈, 둘만이 남은 대련장에 미카즈키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모두에게 숨기고 있는 것을 이 할애비에게도 알리면 안 되는 건가?"

"......"


카슈는 여전히 미소를 띠우고 있는 미카즈키를 보더니 "아아, 역시 들켰나." 하고 장난스레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눈치 챘어도 안 알려줄 거야. 하고 씩 웃었다. 미카즈키는 동시에 그가 말하지 않는 부분이 주인의 가장 큰 부분이자, 야만바기리 역시 모르고 있을 것이란 묘한 확신이 생겼다. 그랬기에 그렇구나. 하고 웃어넘길 수 있었다. 초기도인 그의 판단이 주인에게 있어서 나쁜 일로 흐르지는 않을 터였으니까.

본채의 대련장에서 나와, 별채로 향했다. 조용한 것을 보아하니, 아직 저들의 주인은 깨지 않은 듯 보였다. 깼다면 적어도 이렇게 얌전히 별채에만 있을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아마 야만바기리에게 안긴 채로 대련장으로 왔거나 했겠지. 카슈는 살짝 안심이라는 듯 숨을 내뱉었다. 별채의 2층, 가장 꼭대기에 올라가, 가장 안쪽에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카슈. ......미카즈키까지?"

"이 할애비가 주인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서 말이야. 하하하."

"주인은 좀 어때?"

"지금은 아까보다 많이 안정되어 있는 상태다."


다행이다. 카슈는 조심히 그녀에게 다가가 살짝 어설프게 얹어져 있는 물수건(아마 야만바기리가 얹었을 것이다.)을 치우고 이마에 손을 얹어 열을 재보았다. 그리고는 살짝 따뜻한 물수건을 옆의 물이 들어있는 바구니에 푹 적신 후, 물기를 짜내 이마에 얹어주었다. 그 과정을 살짝 멀리서 떨어진 채로 주욱 지켜보고 있던 미카즈키는 한 걸음, 조용히 다가갔다. 다가온 그를 눈치채고는 살짝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보고 싶다고 했지? 하고 말하며 고개짓을 하는 그를 보며 작게 웃고는 다시 소리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


"......?"


어딘가 창백해보이기까지 하는 피부에, 새하얀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순백'이었다. 인간에게서 이런 색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안 듯한 표정이었다. 카슈는 아무런 말도 없는 그의 모습에 그럼 그렇지. 하고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저도 처음에 그랬었으니 저런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야만바기리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아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었으니 익숙해지고 나서야 서로가 서로를 봤기에 저런 반응은 없었지만.


"놀랍지? 괜찮아.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으음. 이 베일은?"

"아, 그거. 주인이 평소에 하고 다니는 거. 눈 보여주기 싫대."


반투명한 검은색의 베일을 보며 침음에 잠겼다. 깔끔한 상태였으나, 세월에 따른 흔적은 지울 수 없었는지 꽤 오래되어 보였다. 적어도, 10년 가량. 미카즈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주인의 눈 색, 무슨 색인지 알고 있는가?" 하고 물었다. 야만바기리는 그녀의 눈 색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에 고개를 저으며 카슈를 바라보았다. 그는 으음, 하고 근심에 잠긴 듯한 소리를 내었지만 동백꽃. 하고 답해주었다. 붉은 색의, 겨울의 흰 눈 밭에서 피는 눈에 띄는 꽃의 이름에 야만바기리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미카즈키는 세월의 덕분인지 꽤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렇구나. 하고 의문을 접었다. 그는 여태까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도 그녀의 상태는... 정말.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구나."


전체적으로 너무 작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적어도 10대 후반은 되어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거리차가 있었기에 착각하게 만들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이는 그녀의 손은 너무도 작았고, 키 역시, 너무 작았다. 그냥 전체적으로 정말 작은 소녀였다. 성인 여성이 아닌 어린 소녀라 부르기에 충분한 그녀의 모습은 미카즈키에게 굉장히 큰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20년을 살아온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20년을 살아왔음에도 10년을 살지 못한 이들보다 더 작아보였다.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다시 인사를 건네고는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확인하고 싶은 것은 확인했다. 그래, 그녀는 우리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후에 찾아올 배신'이 무서운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고생을 시켰으면 저 어린 아이가 저런 모습일고..."


미카즈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어째선지 더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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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혼마루들 정화 사니와 & 임시 사니와 → 현 혼마루의 사니와」 로 왔다는 설정
* 검 → 사니
* 창작 사니와 (드림주)
* 아마 검들에 의한 사니와의 힐링물











카슈 키요미츠와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요즘들어 고민투성이였다. 가령 작고 여리고 어린 사니와라던가, 최근들어 악몽을 꾸는 빈도가 잦아진 사니와라던가, 사니와하고 가까워지고 싶은데 사니와가 피해서 가까워질 수 없는 다른 남사들에 대한 것이라던가. 꽤 많은 고민들이었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특히 사니와, 자신들의 주군에 대한 것은 더더욱.



카슈 키요미츠는 현재 자신의 주인인 사니와, 코하루의 초기도였다. 정확히 말하면 초기도이다. 부러지지 않은 채 여기까지 같이 견뎌온, 그녀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그런 초기도. 그에 비해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카슈 키요미츠보다는 조금 더 늦게, 이곳에 오기 조금 전에 합류한 남사였다. 그랬기에 그녀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외에는 알지 못하지만 그 어느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상처를 받았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ー



다른 사니와들이 떠나버려 비고 어두워진 혼마루의 정화를 담당하고 임시 사니와가 되었던, 그런 존재였으니까.





초기도와 초기도의 비슷한 취급을 받는 둘을 제외한 나머지 남사들 역시 고민이 꽤 있었다. 자신들이 다가가기만 해도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는 작고 어린 사니와. 단도부터 시작해서, 혼마루에 있는 대태도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현 주인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까웠다. 다만 문제는 초기도에 가까운 둘 외에는 전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이 이유가 아닌, 두려움의 이유로. 그 탓에 카슈도 야만바기리도 다른 남사들도 꽤나 애를 먹고 있었다. 다른 남사(방관자를 자처하던 미카즈키와 이치고를 제외한 다른 남사들이었다.)들은 이유를 알기를 원했고, 카슈와 야만바기리는 말 해주어도 괜찮은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결국 둘은 이 건에 대해 그녀에게 상담하기로 결정했다. 누가 뭐라 한들 당사자니까.


"그래서, 주인의 이야기를 다른 녀석들에게 해주려고 하는데, 괜찮은가?"

"...무슨 이야기......?"

"......주인이 이전에 했던 일이라던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 라던가?"

"......"


상관 없어. 잠시간의 고민 끝에 내려진 허락에 둘은 눈빛을 교환했다. 같은 도파의 다른 검만큼 통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둘은 꽤 오랜기간을 같이 한 검이었다. 한 주인 밑에서 한 명의 주인만을 섬기며 여태까지 지내온 검이었다. 그럼 오늘 저녁에. 대련장에서? 좋아. 짧게 대화를 나누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은 곧 가져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주인. 웃으며 카슈가 먼저 나가고 가볍게 인사를 꾸벅이며 야만바기리가 나갔다. 홀로 방에 남겨진 그녀는 따뜻한 숨을 내쉬었다. 몸이 꽤나 무거웠다. 그녀는 서류들 앞에 앉아, 일해야지.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 사이, 그녀의 방을 나온 두 도검은 흩어져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남사들에게 '오늘 저녁에 대련장에 모여달라'는 말을 전하였다. 의문을 표하는 남사들도 있었으나 그녀의 초기도와 초기도에 가까운 이의 말이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슈는 미츠타다에게 그녀의 저녁상을 부탁함과 동시에 저녁에 대련장에 모여달라는 말 역시 전했다. 다시 돌아다니며 말을 전하고 있을 때 식사시간이 다가왔다. 본래라면 검이기에 식사는 필요 없었지만 츠쿠모가미가 된 탓인지 식사가 정말 필요해졌다. 그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잔말 없이 얌전히 모여 활기찬 식사를 즐겼다. 대체로 이곳에 없는 주인과 카슈와 야만바기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왜 모여달라는 걸까? 저녁이면 이거 먹고 나서지? 그렇겠지? 대체로 그런 이야기가 식사자리의 수다거리가 되었다.


카슈는 미츠타다에게 받은 작은 일인용 상을 들고 그녀의 방에 향했다. 야만바기리는 본래 소식을 했기에 금세 먹고 자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주인, 나 왔어. 하고 가벼운 인기척을 내며 방 안으로 들어갔으나


"주인!!"


그녀는 서류가 널부러진 책상 위에 쓰러져 있었다. 카슈는 상을 바닥에 두고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잠든 것이기를 바라며 그녀를 안아들었다.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몸이 상당히 뜨거웠다. 결국 터졌나, 생각하며 그녀를 침대에 눕혀주고는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로 달려가듯 가는 카슈를 보며 미카즈키가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 있나? 그러나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야만바기리!"

"카슈."

"당장 야겐에게 가서 열을 내릴 수 있을만한 약을 받아와. 또 쓰러졌어."

"그래. 너는 주인 곁에 있어라. 금방 받아서 가지."

"부탁할게, 야만바기리."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고 역할을 나눈 둘은 그 자리에서 두 갈래로 나뉘었다. 카슈는 먼저 물이 든 작은 바가지와 작은 수건을 들고 그녀의 방으로 갔다. 야만바기리는 그 사이에 잠깐 스쳐지나갔던 야겐을 찾아 달리다시피 걸었다. 야겐을 발견하고는 그의 가느다란 팔을 붙잡았다. 열이 내려갈 만한 약을 받을 수 있을까. 평소의 무덤덤한 얼굴과는 다르게 살짝 다급해보이는 얼굴이었다. 모포로 가려져 있긴 했으나,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누가 아픈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주인이 아파. 하는 야만바기리의 짧은 설명에 야겐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래서 이렇게 다급해보였나. 잠깐만 기다려. 야겐은 자신의 방 중 약재를 모아둔 방에 향했다. 정확히는 사니와를 위해 모아둔 약재가 있는 방에. 그 방에 들어가 능숙하게 해열제를 만들어 야만바기리에게 주었다.


"그럼 오늘 모여서 설명하는 건 누가 하는 거지?"

"아마 내가 할 거다. 그 녀석은 주인을 보살펴야하니까."

"보통 그런 건 초기도가 하지 않나?"

"주인은 아프면 나 조차도 곁에 잘 갈 수 없으니까."


아. 야겐은 간단히 납득했다. 대충 영력이 흘러나온다던가 그런 쪽의 이유겠지. 카슈 키요미츠가 곁에 갈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영력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고 더이상 받을 영향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야겐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럼 오늘 모이는 것은 그대로겠네. 하고 말하자 야만바기리는 그에 답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저렇게 남사들에게 과보호 받는 사니와도 드물텐데, 의외네. 하고 중얼거렸다.


"카슈, 약 가져왔다."

"아, 고마워."


문 앞에서 그를 부르자 빠르게 달려와서는 약을 받았다. 주인은? 야만바기리의 질문에 카슈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살짝 침울해진 목소리에 카슈는 작게 웃었다. 괜찮을 거야. 주인이잖아. 금방 털고 일어나서 우리를 엄청 예뻐해주실 걸? 살짝 장난이 섞인 듯한 목소리에 야만바기리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주 있던 일이잖아? 괜찮을 거야."


초기도 답게 카슈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해보였다. 야만바기리는 자신이 초기도였다면 저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은 금세 지워버렸다. 어차피 주인이 고른 초기도는 자신이 아니었고, 첫 단도가 사라진 후에 온 도검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지금부터 할 일은 대련장에 모여있는 남사들에게 주인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카슈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인은 내가 돌보고 있을테니까 걱정말고 다녀와." 하고 등을 떠밀어 준 것이겠지. 그리고 야만바기리는 그 기대에 부응하여 방 앞을 떠났다.


"주인. 야만바기리도 다른 검들도 꽤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우리들을 성장시켜서, 그 녀석들한테 대항하러 가야지. 그렇지, 주인? 카슈는 그녀의 입에 약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콘노스케가 들었다면 질색할 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작게 중얼거렸다. 초기도라는 명칭이 붙은 만큼의, 포커페이스였다. 약을 다 먹이고 난 후에는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땀을 닦아주고 이마에 물기를 짠 물수건을 올려주는 등, 끊임없이 간호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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