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 → 사니
* 창작 사니와 (드림주)
그녀가 눈을 뜬 것은 저녁 시간이 이미 지나버린, 밤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녀의 옆을 줄곧 지키고 있던 카슈는 그녀가 깨어났음을 눈치채고 옆의 베일을 건네주었다. 이미 익숙해진 듯 받아든 그녀는 베일을 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깥에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정말 드물게도, 다른 점이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선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마 자는 사이에 사니와 일을 대신 처리한 카슈가 그들에게 현세에 다녀올 권한을 조금씩 나눠준 것이겠지. 그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 이것들이 자신의 주변에 펼쳐져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의문을 이해한 것인지 카슈는 작게 웃었다.
"주인한테서 점수 따려고 그러는 거래. 아직 안 온 쪽은 아와타구치랑 산죠, 둘이네."
아와타구치는 아무리 인원이 적어도 많은 것으로는 가장 많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단도들은 호기심이 꽤나 많은 도검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산죠는 어째서? 하고 의문을 품고 생각에 잠겨있던 도중, 야만바기리가 방 안에 들어왔다.
"카슈, 산죠 도파가 돌아왔... 일어나 있었던 건가, 주인."
"방금 일어났어."
문을 열고 들어온 야만바기리의 뒤로 이마노츠루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앗, 주인님이다! 하고 밝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쪼르르 다가갔다. 나이로 치자면... 노코멘트를 하겠지만, 단도였던 탓인지 귀여워보여 품에 포옥 안아버렸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마노츠루기를 보고 있자면, 9살 전까지 지냈던 신사에 종종 보이던 기모노를 입은 3살, 5살 7살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랬기에 오히려 더 무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홀로 그 시기에 대해 떠올리고 있자니, 미카즈키가 이마노츠루기를 불렀다. 퍼득, 과거에서 빠져나와 옆을 바라보자 정좌를 한 채로 앉아있는 산죠 도파... 그러니까, 미카즈키와 이시키리마루, 이마노츠루기가 정좌로 앉아있었다. 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꿈뻑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우리가 현세를 다니며 생각을 해보았는데 말이다. 역시 아가에게 좋은 선물은 이것이 최고인 것 같아서 말이야."
"네......?"
얼빠진 소리를 내며 셋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마노츠루기가 미카즈키를 향해 타박했다. 그녀는 이 때, 자신이 베일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감사했다. 안 그랬다면 그 얼빠진 얼굴이 그대로 그들에게 노출되었을테니까.
"아이, 참. 미카즈키! 그러면 주인님이 못 알아들으시잖아요!"
"으음? 그런게야?"
"하하. 우리들처럼 헤이안 쪽이 아니니 말이야."
약간의 만담을 보는 느낌이 들어 긴장했던 자신이 어째선지 초라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만담은 금방 끝나버려, 그녀는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긴 했지만. 아가. 하고 부르는 미카즈키의 목소리가 어째선지 가라앉은 것 같아, 움츠러든 그녀를 보고는 미카즈키는 울상을 지었다. 평소에는 표정 변화 하나 없던, 웃는 낯으로 시종일관 방관하던 그가 그녀를 보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하고 작은 소리로 덧붙이며.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우리가 아가에게 주는 선물은 우리란다. 정확히는 우리의 본체지만서도."
"......어, 그러니까, 그 말은..."
"우리가 이제 주인님을 지켜줄게요!"
"혼자서 애쓸 필요 없단다."
그들의 말에 미카즈키는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전부 맞다는 듯이, 그저 그녀를 향해 다정히 웃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다물고, 열었다가 다물기를 반복하더니,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선물들을 조심히 피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카슈와 야만바기리는 놀란 듯 얼어있었고, 정좌로 앉아있던 그들은 그녀를 따라 일어나더니, 그녀가 자신들 쪽으로 올 때마다 꼭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보는 부모처럼 안절부절거렸다. 겨우 그들의 앞에 도착하자, 조심히 팔을 뻗어 그들을 안았다. 고마워요. 하고 작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을 안고 있으니, 정신을 차린 카슈가 그녀를 빼앗듯 안아올렸다.
"네네, 거기까지. 아직까진 주인의 영력을 받은 건 우리 뿐이거든?"
"그래서 받으러 온 것이란다. 아가, 우리를 받아주지 않겠니?"
"......"
고개를 가볍게 끄덕임에 희비가 확 갈려버렸다. 그 모습에 그녀는 카슈의 머리를 조그만 손으로 쓰다듬어주며 "나한테 첫번째는 카슈랑 야만바기리니까, 걱정마." 하고 달래주었다. 카슈는 언제나 그랬듯, 알고 있다 말하면서도 기쁜 듯한 표정은 감추지 않았다. 산죠 도파는 이마노츠루기를 시작으로, 미카즈키, 이시키리마루가 그녀의 영력을 나눠받기 위해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뿌듯해보이는 표정은 감추지 않았다. 카슈가 그녀를 침대에 앉혀주고, 그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이마노츠루기가 가장 먼저 쪼르르 달려가, 그녀의 앞에 자신의 본체, 단도를 내밀었다. 그녀는 그를 쓰다듬었던 손길로 단도를 한 번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칼날의 위에 손을 얹고 영력을 불어넣었다. 현현시킬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하는 중이었다. 적당량이 되었다, 싶어 손을 떼자 이마노츠루기는 그녀의 침대에 폴짝 올라가, 그녀의 뒤에 매달렸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후로도 미카즈키와 이시키리마루에게도 똑같이 해주자, 살짝 바뀐 것이 있었다. 그녀와 그들 사이에서.
"주인 아가, 저녁은 먹었는가?"
"주인님, 주인님! 다음에 외출하실 기회가 생기면 우리랑 같이 나가요!"
"그럼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주인을 위한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해야겠구나."
유일하게 이시키리마루만이 나가려고 하자, 이마노츠루기가 그를 잡아당겼다. 밤에 눈도 안 좋은 대태도가 어딜 단도도 없이 혼자 나가려고 그래요? 하고 하는 말이, 해석하면 꼭 "노안이신 분이 보호자도 없이 어딜 가려고요?" 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단언 그녀만이 아니었다. 야만바기리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카슈를 불렀다. 둘은 어째선지 여전히 통하는 것이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에게 나가라며 손짓을 했다. 나가지 않을 때는 참새를 내쫓듯한 흉내까지 내보였다. 우리 주인 이제 자야 돼. 다 나가! 하고 말하며 내쫓는 것이 꼭...
"......엄마?"
합.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은 그녀의 말에 모두가 굳어버렸다. 카슈는 벙찐 채로 있다가, 그녀를 부르며 후다닥 달려갔고. 물론 그녀에게 붙어서 종알거리는 것이 이번에는 꼭 반대가 된 느낌이었다. 그 모습에 산죠 도파는 웃어버렸지만. 어찌저찌 그들을 진정시키고 본채로 보내자 방 안은 고요했다. 창 밖에는 초승달 하나가 떠 있었다. 예쁜 달이네. 주인은 밤을 좋아하는 건가? ......으응. 낮이 좋아. 밤은 무섭잖아.
아침이 되자, 소식을 들은 단도들이 그녀의 방에 우르르 몰려왔다. 물론 전원 아와타구치였다. 대충 내용은 모두가 짐작했듯, 어떻게 자신들을 두고 산죠 먼저 받을 수가 있냐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결론은 자신들도 받아달라, 라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하필이면 이제 막 일어났다는 점이었고, 눈을 가리기 위한 용도인 베일을 쓰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눈을 뜰 수도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도중에 머리 위로 무언가가 훅 뒤집어졌다. 동시에 너희들! 하고 살짝 화를 내는 듯한 목소리의 이치고가 나타났다. 그녀는 안심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몰려가면 주군께서 당황하시잖아. 그러면 안 돼. 알았지?"
"네에~..."
"다음부터는 꼭 주군께 먼저 양해를 구하고 들어갈 것."
"......"
"대답은?"
"네에~"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야겐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혼자 아무도 모르게 숨죽여 웃고 있으니, 밑에서 손이 하나 훅 들어왔다. 그녀는 놀라기는 했지만 옷 소매가 카슈임을 알았기에 안심하고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받았다. 베일이었다. 그녀는 베일을 평소보다 조금 세게 묶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하얀색은 아니고, 그렇다고 회색빛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하얀색이었지만, 낡고 끝부분이 더러워져 누구의 것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모포를 벗었다. 카슈의 옆에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야만바기리에게 모포를 둘러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착해, 야만바기리. 잘했어. 그렇게 그를 칭찬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카슈가 그녀에게 꼭 달라붙어서는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주인, 나는? 나는 안 해줄 거야? 카슈는 항상 잘하고 있지.
아침의 사건은 이치고와 나키기츠네를 선두로 아와타구치 도파와 라이 파(어째선지 아직까진 둘 밖에 오지 않은 라이파까지 섞여 있었다.)의 본체에 영력을 불어넣어주고 나서야 종료되었다. 물론 최고 보호자 외의 단도들과 대태도 하나는 그녀의 식사를 위해 방문한 미츠타다와 카센에 의해 2차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물론 그녀는 침대 끝에 걸터앉은 채로 따뜻하게 데워진 호박죽을 먹고 있었다. 1/4정도 먹은 후, 그녀는 그릇을 내려두었다. 맛있었어요, 미츠타다. 카센. 남은 양을 보자, 둘은 (특히 미츠타다가) 울상을 지었다.
"주인 군, 혹시 입맛이 없었니?"
"따로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얘기해주렴."
아, 설마. 그녀는 카슈와 야만바기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확답을 구하듯이. 카슈가 먼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야만바기리는 그 뒤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셋의 미묘한 대화를 지켜보던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으음, 하고 작게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확 젖히고는 푹 숙였다. 하아. 그녀의 한숨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작게 울려퍼졌다. 단도들은 자신들이 했던 행동이 있었기에 잘못한 거겠지? 하고 소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나 말거나 카센과 미츠타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적정량이 이 정도인 것 뿐이에요."
대체 얼마나 먹었길래 그래? 하고 야겐이 다가오고, 남은 양을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은 더 먹어야 돼. 하고 덧붙이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카슈는 여전히 그녀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를 껴안은 채로 붙어있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불편하지도 않은지 익숙하게 카슈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물론 질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능숙하게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카슈는 떨어지지 않은 채, 그녀의 말에 덧붙였다. 주인은 여기서 더 먹으면 안 돼. 카슈의 말에 그를 작게 부르며 그녀는 그의 이마에 딱밤을 약하게 놓았다. 물론 작고 연약한 그녀였기에 그가 아팠을리는 없지만 정말 애교를 부리는 것에 능숙한 그는 아프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야겐에게 작게 입모양으로 "트라우마." 하고 알려주었다. 이정도만 알려주어도 훌륭한 의사인 야겐은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기에.
"......설마, 대장. ...하아. 일단 다들 나가. 보호자... 그래, 거기 대장하고 제일 가까운 둘하고 식사담당 고정 멤버 둘만 빼고 나가줘."
이치 형도 나가줘. 부탁할게. 단호한 야겐의 말에 이치고는 단도들(과 단도를 가장한 대태도)을 데리고 그녀의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럼 우리는 야겐이 오기 전에 밥 먹고 놀고 있을까? 하고 이치고는 능숙하게 동생들을 달래, 방으로 돌아갔다. 라이 파의 둘도 동생들과 같이 놀아주시겠나요? 하고 같은 남사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 이치고는 가볍게 닫힌 방문을 향해 인사를 한 후 그들을 좇아갔다. 야겐은 그들이 다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는 그녀를 향해 어제와 같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그랬어?"
"이곳에 오기 한... 혼마루 다섯개 전 즈음...?"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거라면 카슈가 더..."
"그 이야기는 내가 나중에 해두겠습니다~"
야겐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안경을 끼고, 여러가지를 항상 갖고 다니는 수첩에 적는가 싶더니 볼펜으로 수첩을 툭툭 건드렸다. 이곳 야겐만의 습관이었다. 골치가 아픈 환자가 왔을 때마다 하는 습관. 미츠타다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은 야겐 군이 좋아하는 걸로 점심을 해야겠네, 하고 홀로 생각했다. 야겐은 이후에도 지금 먹는 양 이상으로 먹으면 무슨 반응이라도 나타나냐는 등, 이것저것을 질문했고 그녀는 그것에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카슈는 이젠 쓰다듬 받는 것이 아닌 그녀를 쓰다듬고 있었다. 정작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모두가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야만바기리는 남은 그녀의 빈 옆자리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있었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이. 사실 그들의 행동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아는 카슈의 성격 그대로라면 그의 행동은 지금 꽤 과장해서 하고 있는 편이었다. 아마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이 목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차마 그들을 주인 바라기라고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사이 야겐은 이것을 말해야하나 고민하는 것 같더니, 결정한 듯 수첩을 덮고, 펜과 같이 주머니에 넣었다.
"대장은 지금 적정량 이상을 먹으면 몸에서 안 받아줄 거야. 그러니까 구토를 하는 거고. 사실 이런 상황에 적정량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하긴 한데... 아마 기억이 사라진 것이랑 관계가 있을 거고?"
카슈를 힐끔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당시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많이 앓았다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했다. 그마저도 카슈가 알려준 것이었으니까.
"몸에서 안 받아주는 거니까 억지로 먹으려고 하지 말고, 이건 약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평소보다 더 안 받아준다, 싶으면 무조건 나한테 와. 영양제라도 놔줄게. 그리고 둘은 대장이 먹을 양은 작은 머그컵... 있지? 거기에 절반정도 해서 가져다주는 게 좋아. 이런 그릇보다는. 그리고 거기 초기도 둘은 대장이 혹시라도 정량을 넘기지 않게 잘 보고 있고. 주의사항 끝."
대장도 마음 고생 심했겠네, 수고했어. 거기 둘도 그동안 대장 지키느라 고생했으니까 좀 자둬. 오늘 밤은 우리 아와타구치가 돌아가면서 불침번 설테니까. 야겐은 상냥히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미미한 변화였기에 카슈와 야만바기리 외에는 그다지 눈치를 채지도 못했다. 한창 소란스러웠던 아침 시간이 지나고, 야겐과 카센, 미츠타다가 빠져간 방 안은 너무도 넓어보였다. 어느새 점심도 지나고, 해가 지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카슈와 야만바기리, 그리고 종종 놀러오는 단도들과 방 안에서 얌전히 앉아 놀았다. 고코타이가 올 때는 토라 군과 함께 놀기도 했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카센하고 카슈하고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그녀가 꽤 생각에 깊이 잠겨있는 동안 카슈와 야만바기리는 그녀를 열심히 치장해주고 있었다. 입술에 붉은빛 연지를 바르고, 머리카락은 나비 장식이 달린 비녀를 꽂아 고정시켰다. 옷은 평소와 같은 무녀복이었지만 치하야가 조금 달랐다. 평소의 것은 하얀색이었는데 이것은 어째서인지 투명한 연분홍빛에 학이 아닌 나비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치하야를 한 번, 둘을 한 번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만바기리는 굉장히 쑥스러운 듯, "우리가 직접 주문해서 받아온 거다. 받아줘." 하고 모포를 푹 눌러쓰며 웅얼거리듯 말하였다. 그녀는 손짓으로 둘을 부르고는 둘의 목에 팔을 둘러 꼭 안아주었다. 고마워, 굉장히 마음에 들어. 그렇게 잠시 껴안은 후, 카슈가 살짝 떨어지고 야만바기리가 그녀를 안아들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야만바기리는 힘이 굉장히 강했다. 한 팔에는 그녀를 앉혀 받치고, 다른 팔의 손으로는 그녀의 눈을 살포시 가렸다. 카, 카슈? 야만바기리? 당황한 채로 그녀가 둘을 부르자, 카슈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고, 야만바기리는 안고있던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괜찮아, 옆에 있어.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꽂혔다.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착하다며 머리를 쓰다듬는 온기마저 익숙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멈춘 둘에게 어디로 온 것인지 물었지만 비밀이라며 카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야만바기리가 손을 내리고, 문고리를 잡았다. 반대쪽 문고리는 카슈가 잡았다.
"여기, 대연회장이잖아. 무슨 일로 온 거야, 여기는?"
"들어가보면 알아, 주인. 자, 연다? 하나, 둘-"
둘이 문을 동시에 열자, 폭죽 소리가 팡, 하고 울려퍼졌다. 회의실로 쓰이는 대연회장답게 한 쪽에 식탁이 길게 늘여져 있었다. 마치 뷔페식처럼. 그리고 안에 있던 남사들은 전원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외쳤다. 비난의, 욕설이 담긴 말이 아닌, 환영의, 축하가 담긴 말을.
"혼마루 취임을 축하합니다, 주군!"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경멸이 섞이지 않은, 환하고 밝은 미소. 야만바기리는 그녀를 여전히 안은 채로, 카슈를 옆에 두고 가장 상석으로 향했다. 예쁘게 꾸며져 있는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 나서 그녀의 왼쪽에 섰다. 오른쪽에는 카슈가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중요인물을 밀착해서 보호하듯. 연장자들 중, 그녀의 영력을 나눠받고 가장 침착한 둘, 이시키리마루와 미카즈키가 그녀의 앞에 나섰다. 둘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도, 웃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서는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올 것 같았지만 꾹 눌러냈다. 감정을 참는 것은 익숙했다.
"자아, 보려무나, 주인 아가. 이 많은 이들이 네 권속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란다."
"너무 쉽게 설득해버려서 조금은 김이 빠졌다고 해야 될까. 다들 너를 좋아한단다."
놀란 듯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둘에게 도움을 받아, 의자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가볍게 무릎을 꿇고 정좌로 앉아, 손바닥을 바닥에 마주댔다.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눈을 살포시 감고 작고 빠르게 말을 하였다. 지금 이곳에 수많은 이들에게 나눠주고자 하니, 나의 기도를 들으시어 응해주소서. 그렇게 웅얼거리듯 말한 그녀의 말을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이루고 있던 영력이 전 주인이 아닌, 현 주인인 그녀의 힘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즉, 그녀는 이곳에 있는 남사들의 권속이 될 것을 허락한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챈 이들 중, 츠루마루가 가장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화끈하네, 주인은!! 이 많은 인원을 이루고 있던 영력을 단숨에 주인의 것으로 바꾸다니. 이것 참 놀랍군, 그래!"
"츠루 씨, 놀라움은 주인 군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아주지 않을래?"
"이야, 미츠 도령은 여전히 차갑구만!"
단호한 건가? 츠루마루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미카즈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를 가볍게 안아, 의자에 앉혀주었다. 성급한 주인이로구나. 그렇지 않아도 모두가 대기하고 있었거늘. 하고 다정히 말하자, 그녀는 "어쩔 수 없는 걸. 저렇게 많은 남사들이, 나를 위해 모여준 거잖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 하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쩜 이리 마음씨도 곱구나. 미카즈키는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쿡쿡 웃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된 것을 느끼고는 눈을 살짝 감았다. 이제 이곳에서 느껴지는 영력 곳곳이 자신의 것이었다. 정말, 이제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인 것이었다. 사니와, 코하루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여러분. 그녀가 가볍게 인사를 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미카즈키는 본래 온 당일에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다들 서운해하고 있었다며 슬쩍 알려주었다. 그녀, 코하루는 일부러 인사를 하러 와준 둘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하였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고, 달이 뜬 것은 한참 전 일이 된 시각. 아무리 영력이 차고 넘치는 그녀라 한들 인간은 인간이었다. 의자에 앉은 채로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아이젠이 빠르게 담요를 하나 들고 와,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주인, 진짜 작다. 아이젠이 작게 중얼거리자, 옆에서 호타루마루가 그러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우자는 사요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있었다. 스탠딩 형식의 연회였으니, 사실 바닥에 앉든 어디에 앉든 자유였기에 사요의 옆에 앉은 것이었다. 지로타치는 얼마 없는 태도들 중 이치고를 제외한 태도들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형님. 주인은... 굉장히 다정한 것 같아.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빌어줬어."
"......그렇네요. 인간 치고는 다정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녀가 영력을 방출해낼 때, 그녀의 기도가 그들에게 살짝 스며들어갔다. 아프지 말고, 부러지지 말고, 건강하게 내 옆에 계속 있어주길. 성과를 잘 내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있어달라는 것이 그녀의 기도였다. 소원이기도 했다. 카슈는 그런 소원을 빌었던 거냐며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정말~! 어두우면 술 마실 맛이 안 나잖니?! 우리는 이제 그 아이의 권속이니 우리가 지키면 되는 거야! 뭐, 그러는 김에 예쁘게 꾸며줘도 될 것 같지만~?"
지로타치는 아하하! 하고 웃으며 술을 들이마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으며 그렇네, 하고 동의했다. 미다레와 카슈는 지로타치에게 꾸밀 거라면 자신들도 있다며 손을 번쩍 들었고, 그 모습에 다시 웃어보였다. 그녀가 그런 소원을 빌어주었으니, 이제 자신들의 차례였다. 그녀의 깊고, 숨겨진 상처를 치유해주고, 그곳을 자신들과의 추억으로 덮어주는 것. 그것이 이제, 자신들이 할 일이었다.
어여쁜 우리들의 주(主)여, 더이상 아프지 말고 그대를 닮은 꽃이 줄지어져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만 걸어가시길.